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는 게 아니었던 것들이 종종 있다. 무심코 사용했던 단어들이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써왔던 단어라 그 의미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혹은 대충 본 것들. 문자로 이번 글감을 받고, 틈틈이 주제에 대해 생각했다. 손으로 쓰지 않는 순간에도 머릿속은 바빴다.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그때야 아뿔싸…. 나는 며칠 내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글감은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봐 버린 걸까. 나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무의식이 있던 걸까.
돌아가는 것과 돌이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돌이키다
1. 동사 원래 향하고 있던 방향에서 반대쪽으로 돌리다.
2. 동사 지난 일을 다시 생각하다.
3. 동사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잘못이 없는지 생각하다.
되돌아가다
1. 동사 원래 있던 곳이나 원래 상태로 도로 돌아가다.
2. 동사 지나간 날을 떠올리거나 그때의 생활을 다시 하게 되다.
3. 동사 다시 본디의 상태로 되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돌아가다를 검색했더니 원을 그리며 돌아가다는 뜻이 나왔다. 내가 생각한 단어는 ‘되돌아가다’에 가까운 의미라, 돌아가다 대신 되돌아가다로 찾았다.
내가 느끼기에 돌이키다는 생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되돌아가다는 행동까지 돌아가는 의미인 듯했다. 되돌아가고 싶지만, 정말 되돌아갈 수는 없는. 그래서 생각으로라도 돌이키고 싶은 순간. 잘못한 일에 대한 후회의 순간일까? 너무 좋았던 일이 다시 가고 싶은 순간일까?
내가 ‘돌이키다’를 ‘(되)돌아가다’로 오해하고 떠올렸던 순간은 후회의 날도, 기쁨에 벅찬 날도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조금 더 풀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결혼하고, 신랑과 나 둘 다 백수였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결혼 후 일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이미 백수였고, 신랑은 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우리는 뉴질랜드에 다녀오기로 했다. 둘 다 해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가보겠냐 싶어 그동안 모은 돈으로 6개월 어학연수를 계획했다. 걱정되면서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뉴질랜드에 도착했는데, 이때만 해도 생각도 못 했다. 이 6개월이 우리가 살면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6개월이 될 줄.
우리는 결혼하고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싸우는 일은 흔하고, 심하게 싸워 헤어지는 일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결혼 준비 기간에도 크게 싸울 일이 없었다. 나에겐 ‘결혼 준비가 가장 쉬웠어요!’ 였다. 그리고 신혼 기간에도 하루하루가 평화로웠다. 신랑은 다정했고, 늘 나를 배려했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는 판이 바뀐 거다. 뉴질랜드에 첫발을 들인 순간부터 하나하나 부딪히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는 렌트비가 비싸 공유를 많이 한다. 우리는 한국인 커플이 사는 집의 안방(욕실이 딸린)에 세를 들었다. 주방(냉장고 포함), 세탁기, 거실은 공용으로 사용했다. 같이 쓰는 공간인 만큼 신랑은 내가 더 조심하길 바랐고, 나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래도 뉴질랜드에 온 만큼 조금은 즐기고 싶었는데, 신랑은 즐기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자고 했다. (버는 것 없이 있는 돈으로만 지내야 한다는 압박이 컸던 것 같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마음대로 싸울 수도 없다는 거다. 원래 둘 다 큰소리를 내는 편은 아니지만, 화가 나도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집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조금만 소리를 내도 다 들리고, 우리가 싸운 것을 알면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불편해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때 알았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얼마나 치열할 수 있는지. 소리를 내지 않고 싸우는 게 얼마나 사람을 갑갑하게 하는지. 우리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는 침대 양쪽 끝이었다. 그나마 침대가 퀸사이즈라 다행이었다.
하루가 좋으면, 그다음 하루가 살얼음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6개월을 가까이 보냈고, 마지막 2주는 남섬 여행을 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엄마와 오빠도 오기로 되어있었다. 나도 신랑도 그날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여행 며칠 전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몸이 안 좋아, 수술하게 되었는데 병원에서 수술 일정이 마침 그때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우리라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신랑은 바로 예약해 둔 여행 상품을 다 취소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을 잡았다. 여행 상품은 이미 경비를 다 지급한 상태였기에 환불받을 수 없었고, 항공편만 부분 환불받았다. 남섬 여행이 뉴질랜드의 하이라이트였는데, 남섬 여행을 위해 그동안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아껴왔는데. 나는 신랑에게 정말 미안하고 또 정말 고마웠다.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는 바로 병원으로 갔고, 신랑은 나보다 엄마를 더 걱정하고 챙겼다.
시간이 흘러 올해는 우리가 결혼한 지 10년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둘 다 백수가 되었다. 그때처럼 우리는 백수고, 온종일 같이 있지만, 그때처럼 싸우지 않는다. 한국에 우리만 사는 집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나름의 선이 생겼다.
뉴질랜드에서의 6개월. 뉴질랜드라는 낯선 땅,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서로뿐인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지만, 가장 치열하게 화해도 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치열하게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마치 ‘단기 속성 학원’처럼 우리는 단기 속성으로 서로를 알아 갔던 거다.
내가 이 순간을 돌이키는 것은 후회인지 기쁨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종종 이 순간들을 돌이킨다. 그리고 가끔 신랑한테 말한다. ‘우리 그때 진짜 많이 싸웠지?’ 그럼 신랑은 어리둥절하며 대답한다.
‘그래?!! 우리 싸웠어? 난 기억 안 나는데?! 그런데 우리 그때 못 가본 남섬 가봐야 하는데, 언제 가보지? 다시 뉴질랜드 가고 싶다.’
나는 어떻게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지 어이가 없다가도,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신랑에게 뉴질랜드에서의 기억이 돌이키고 싶은 후회의 날이 아니라서. 되돌아가고 싶은 기억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