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믿음은 의심보다 강하다
근래 들었던 생각이 있다.
알고는 있었는데 최근, 확실해졌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자의식 과잉이다.
*
언제부터였을까, 를 생각하면 역시 고등학생 때부터.
꿈을 꾸고, 이루겠다고 발버둥 치다 보니.
나는 될 거야—를 여기저기 지껄이고 또 속으로 되뇌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뭐, 이제 와서 그때를 조롱하고 싶지는 않다.
꿈을 품은 소년을 어찌 비난하겠는가. 꿈을 품었다는 사실은 그때의 내게 있어 (물론 지금도) 일종의 긍지였다. 꿈을 꾸는 거야말로 인간성의 극치라고 생각했고 또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역시.
그렇게 내 자아는 비대해졌고, 지금처럼 자의식이 과잉되게 만든 것 같다.
뭐라도 된 줄 알았던 거겠지.
에휴 등신아.
*
에고가 지독하다는 것은 그닥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은연중에 남을 깔보는 듯한 시선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이게 참 쉽지가 않다.
다만 이번 글은 그런 자기비판적인 성찰이 주제가 아니니 '자아 죽이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얘기하기로 미뤄두고.
여하튼 내 무럭무럭 자라버린 자아는 지가 잘난 줄 알고 또 잘나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성깔 더러운 놈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대한 자아는 시궁창인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불편함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낀다;)
*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이 집요한 에고는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2023년, 포르노 영화 간판 아래에서 성냥대신 야시시한 명함이 든 성냥갑을 파는 소녀의 이야기를 읽고-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처럼.
진정 하고싶은 일은 기어이 해야 한다.
이 에고는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하게끔 만들었었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이 에고의 존재를 긍정해 보자.
*
글이 좀 난잡한 감이 없잖아 있는데 (어차피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쓰는 종자였으므로 개의치 않겠다) 요는 이것이다.
내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피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지껄여두겠다는 것.
러닝을 한다고 말하고.
나는 마라톤을 뛰겠다고 다짐하고.
최선을 다해봐야 5km 언저리에 불과했던 내가 이제 기어이 20km를 뛴다.
실패하는 나를 내가 인정할 수 없어서.
마라톤 대회에서 10km 뛴 지 얼마나 지났다고 바로 20km에 도전해서 성공했다.
두 달 넘게 계속 지껄여왔다.
러닝 좋아한다.
취미가 달리기다.
특히,
"내년에는 마라톤을 뛰어야지."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꾸준히 뛰었다.
그래서 8km라는 신기록을 세우고 두 달 만에 20km를 성공했다.
그렇지.
하겠다고 말하고 달려드는 이 지독한 자아는 기어이 해내고 마는 독기를 품고 있었지.
그랬지.
과학자가 되겠다고 떠들 때, 몇 시간이고 죽치고 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고 문제를 풀었지.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 (잡설이 길다.)
그랬다.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글을 싸재끼고 있지. 공책에 끄적이는 걸로 모자라 누군지도 모를 독자들에게 낯 뜨거워지는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보여주고 있다.
*
그래.
할 수 있다고 믿는 나는 할 수 없다고 의심하는 나보다 강하다.
나의 믿음은 나의 의심보다 강하다.
그러니—,
*
생각이 여기에 다다랐을 때 즈음.
여기다 지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2025년 목표를.
또, 인생의 목적을.
남이 보면 못마땅해 보일 이 자의식 과잉을.
내 믿음은 의심보다 강하니까.
마라톤을 완주해야지.
기말고사는 내가 1등 해야지.
그대로 2학기도 1등 해야지.
공인외국어자격증을 따야지.
그래서 교환학생을 가야지.
국제기관에서 연구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소설가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