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을 다시 앞으로

첫 마라톤 대회

by 초제

군 생활을 하며 러닝에 재미를 붙였다.


전역을 하고. 잡념을 지우려 뛰었다.


무작정. 계속.


취미라기엔 너무 멀리 온 것 같은데.


어느새, 마라톤 대회에 나간 자신을 보았다.


*


고작 10km를 마라톤이라 부르기엔 스스로도 좀 부끄럽긴 하다.


하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그런 얄궂은 생각도 들고 그러는데.


그래도 스스로에게 좀 감동을 했다.


예전의 나라면 할 수 없었을 그런 기록이니까.


10km, 55분 하고도 얼추 30초.


1시간 내로만 들어가보자, 대충 그런 생각이었는데.


고생했다.


나.


*


내가 러닝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기억난다.


무슨 일이래, 무슨 컨셉이냐, 뭐하러 하냐.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것은 또 아니었던, 그래. 물음표에 가까웠던 것 같다.


—뭐라도 해야겠더라고.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알아들을리는 없을 노릇이니 나는 그저 속으로 삼키고 대신 답했다. 주변에 달리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이렇게나 귀찮은 일이다.


"기분이 좋더라고."


그래. 그것도 사실이지. 도파민인지 아드레날린인지 모를 호르몬이 잔뜩 뿜어 나와 아픈 것도 쓸데 없는 생각도 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고양감. 심장이 뛰고, 피가 돌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분명해지는 그런 감각.


그 감각이 퍽 기분 좋았다.


*


제법 오래 고민했던 것 같다.


21년부터 혹은 그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가.




확신이 없었다.


그래, 자신을 잃었다.


등신처럼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몇 년이 흘렀더라. 열정으로 가득 찼던 소년의 마음에는 벌써 얼마나 많은 얼룩이 묻어있는가.


그 소년을 타르와 니코틴, 알코올과 카페인에 묻혀 살아가게 만든 것은, 나를 더럽혔던 것은 다름 아닌 내가 아니었던가.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몇 번을 지껄여도 행동은 제 자리였다고 생각했다. 오늘 자고 내일이 오면 비참한 오늘보다 한심한 내일이 되어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내가 언제 러닝을 시작했더라.


아마도 17살, 여름 방학.


살이나 빼자고 시작했던 매일매일의 운동장 10바퀴.


아마 2km 정도는 되겠지.


그 거리가, 나는 30분이 걸렸다.




다시.


나는 여전히 한심한 인간으로 남아있는가?


나를 독방 정신병 환자로 몰아세우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내가 아니었는가?


*


달라지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이라 눈치 채지 못했었을 뿐이었지.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의미 없는 발버둥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내가 나를 여지껏 포기하지 못했나 보다.


그러니 한 걸음을 다시.


크게


앞으로.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 더랬나.




나는 이제 나의 상처를 조롱하는 글을 쓰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신을 연소켜 가는 일이 달리기의 본질이라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한 줄, 믿어보기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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