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성의 저서 '에이트'를 읽고 저는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AI를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로 나뉠 것이라는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내 아이가 AI에게 지배당하는 삶을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었습니다. 이는 영어 강사로서 아이들을 마주하던 제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단편적인 지식 습득 위주의 공부가, 과연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정답이 될 수 있을까.'
강사로 일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들이 언어의 본질보다는 정답을 찾는 속도에만 매몰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dissolve(용해하다)'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 저는 'dis'와 'solve'라는 어원을 통해 단어 이면의 논리를 이해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원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빨리 외우고 이 반복적인 과정에서 벗어나기를 원할 뿐이었지요. 그 피곤한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교육자로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저는 2020년부터 드론 교육 현장에 발을 들였습니다. 텍스트 위주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영역으로의 진입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풍경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부터가 드론 특유의 날카로운 모터 소리를 무서워했습니다. 드론 1종 필기를 마친 뒤 실기를 준비하던 중, 교육 현장에서 프로펠러에 손가락을 베이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단순히 손가락이 프로펠러에 스쳐 살짝 베인 거였음에도 그 이후로 드론은 제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기술이 발달해 이제는 프로펠러가 보호구로 둘러싸여 있고 자동 센서까지 갖춰져 안전한 수업이 가능해졌지만, 당시의 트라우마로 저는 1종 실기 시험을 보지 않았습니다. 이 분야는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자격증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회복하고 다시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기질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역동적인 비행을 즐기는 아이가 있는 반면, 조종기를 잡는 것조차 두려워하며 뒷걸음질 치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조종기를 쥐여주는 것이 과연 교육일까?'
단어의 뜻을 억지로 머릿속에 구겨 넣으려 했던 영어 교실에서의 방식이, 드론 현장에서 아이들의 손에 조종기를 쥐여주려던 제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정답을 빠르게 습득하고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만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 발짝 물러섰습니다. 조종기를 무서워하는 아이가 비행 궤적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 기체가 허공을 가르는 리듬을 눈으로 쫓는 그 관찰의 시간 또한 훌륭한 배움의 과정일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직접 조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물리적인 세계와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적 숙련도가 아니라, 아이가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안전한 관찰의 토양을 만들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영어를 가르치며 느꼈던 회의감, 그리고 드론 앞에서 뒷걸음질 치던 아이들을 통해 배운 '다름'에 대한 존중. 전혀 무관해 보였던 이 경험들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정답을 강요하던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 각자의 서사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지금의 '에토스'는 그렇게, 언어를 가르치던 고민과 드론을 대하던 두려움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아주 천천히 설계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