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으로 마실 온 손님 》

책 아끼는 마____음

by 느랑




관장님께서 일이 있으셔서 내가 도서관 지킴이를 하는 날이다. 동네 작은 책방지기가 된 기분이다. 혼자 있자니 적적해서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누군가 가분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80세의 벽, 어린 왕자를 빌리셨던 분이 아닌 다른 할아버지였다. 내게 슬 오셔서 '적과 흑' 책을 쓱 내미신다.

아는 자리 찾아가듯 가셔서 800번대 책장 앞에 서 계셨다. 책을 고이 꺼내 집고 내게 오셨다. 책만 쓱 내미신다.

'이번에는 꼭 여쭈어보기로 했으니까. 대출, 반납한 책에 대해 여쭈어 봐야지!'
"어르신, 반납하신 이 고전 책은 어떤 책이에요?"

그분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 대답을 하시려는 듯 눈이 조금 커졌고, 볼웃음을 아주 살짝 지으셨다.

"이 시대에는 성직자들이 큰 힘을 가지고 있었거든. 성직자들이 흑이고, 군인들이 적이야.
많은 사람들이 죽어. 또 살지. 근데 결국은 다 사랑 이야기야. 고전책들이 다 사랑 얘기인 것 같아."
어르신 얼굴, 손짓이 점점 생기 있게 환해졌다.
"아~ 네. 빨강과 검정이라는 단순한 제목은 아니었네요. 말씀 들으니 이 책 궁금해져요. 저도 읽어보고 다시 여쭈어 볼게요."
"이 고전책들, 글씨도 작고 내용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읽으세요?"
"돋보기 쓰고 보지~ 너무 재미있어. 시간이 얼마나 잘 가는지 몰라."
어르신 말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목소리도 커졌다.
"어르신, 근처 책방하시는 거예요?"
(우리 도서관 근처에는 작은 도매책방, 헌책방이 많다)
"아니, 나는 저기.. 건물에서 일해."
라고 대답하시며 대출 책을 어떤 종이에 찬찬히 싸고 계셨다. 책 덧표지를 고전 시리즈책 사이즈에 맞추어 직접 만든 것 같았다. 바람처럼 음악처럼 적힌 글이 소포지에 얹여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 옆으로 빠르게 갔다.
"어머, 이게 뭐예요?"
"'독서, 고전 등'이라고 썼어."
나이만큼 품격 있는 손가락으로 책 싼 앞표지 한자를 보여주셨다.
"와! 교과서 싸듯이 만드신 거네요. 진짜 대단하세요!"
뒷면을 돌려서도 보여주셨다. 책 제목, 대출, 반납한 날짜가 손글씨로 적혀있었다. 정성 들여 쓴 유연한 필체가 그림 같았다.
"와! 저 이거 사진 찍어도 돼요?"
뭔가 새롭고 귀한 것을 발견한 것 같았다.
소포지로 곱게 싼 책을 더 가까이 올려 보여주셨다.
"고전이 재미있더라고. 돈키호테, 삼총사 읽어봤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 말씀하시며 도서관을 천천히 나가셨다. 나가시는 뒷모습에 설렘이 보였다.
"안녕히 가세요. 나중에 또 여쭈어볼게요."

대출책을 이토록 소중하게 보관해서 정성 들여 읽고 반납하는 이 분. 위인을 만난 것 같았다.
무료로 보는 도서관 책이지만 누군가의 손과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귀한 물질이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책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도서관도 책도 역할을 잘하고 있는 거다. 쓸모는 어떻게 생각해서 다루느냐에 달려있나 보다.

도서관에 빡빡하게 꽂혀있는 저들이 보물로 보인다. 도둑 들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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