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서 사랑으로
두려움은 우리를 묶지만,
사랑은 언제나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두려움의 에너지는 불안, 불신, 위축을 낳는다.
반면 사랑의 에너지는 긍정, 평안, 용기를 낳는다.
지금의 학교를 돌아보면,
교사는 위축되어 있고,
학부모는 불안하며,
학생들은 불신에 가득 차 있다.
그 밑바탕에는 완전한 두려움의 에너지가 흐른다.
서로를 믿기보다 먼저 방어하고,
이해하기보다 먼저 반격하는 마음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어그러져 갔다.
오늘 ‘교육활동 보호 집담회’에서
조벽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육의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구조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문제가 아니라 비전에 집중해야 한다.”
문제에 몰입할수록 터널 비전 현상이 나타나,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마음의 문은 서서히 닫혀 간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려는 행위가
의도치 않게 ‘탓하기’로 이어지고,
그 탓하기는 다시 방어와 반격의 고리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로 바라보아야 할 것은
부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함께 그리고 싶은 긍정적인 ‘비전’이라는 것.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누구의 책임인가?”
“그래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에서 벗어나,
“우리가 진정 바라는 모습은 무엇인가”를 묻는 용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 중심의 질문 대신,
관점을 전환한 하나의 질문이
학교를 다시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출발점이 된다.
학교는 ‘문제 학생’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공간이어야 한다.
결국, 사람이다.
‘문제’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그 문제를 안고 있는 ‘학생’에게 초점을 맞출 것인가는 오롯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관계의 에너지를 바꾼다.
두려움의 에너지는 관계를 위축시키지만,
사랑의 에너지는 관계를 살린다.
사랑의 에너지는
‘서로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동료를, 그리고 나 자신을
옳고 그름의 잣대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보는 시선.
결국,
사랑의 에너지는
관계를 회복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며,
학교를 다시 ‘사람이 사람을 키우는 공간’으로
되돌리는 힘이다.
두려움을 놓아야 비전이 보인다.
각자의 두려움으로 움켜쥔 손을 놓는 순간,
‘역할’이 아닌 ‘사람’이 보인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다시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으로 이어지는 순간.
학교는 다시 살아난다.
두려움을 압도하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다.
Do not f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