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를 인정해 주는 말
지난주, 나는 2학년 보결 수업을 맡게 되었다.
12월이라 그런지
2학년 교실 속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정돈되어 있었다.
생활도, 학습 훈련도 제법 잘 되어 있었다.
그 날 수업은
동화를 듣고 간단히 내용을 파악한 뒤,
삽화 장면을 색칠하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은 각자 색연필을 들고
주어진 밑그림에 색을 입히기 바빴다.
그런데 한 남자아이는
색칠을 하지 않고
밑그림에 무언가를 더 그리고 있었다.
처음 그 모습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반가움’이었다.
주어진 미션을
대충 빨리 끝내고 쉬려는
6학년 아이들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따로 동기부여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디테일을 더하고 있는 장면이
괜히 반갑게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
아이가 그리고 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무렇게나 끄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려진 선을 따라
자기 나름의 생각을 보태
디테일을 살리는 중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응,
이미 그려진 밑그림에
자기 생각을 더해서
섬세하게 표현하는 건
아주 훌륭한 일이야.”
중요한 순간을 지나치고 있는 듯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말을 덧붙였다.
“다만, 시간을 정해두고 그리면 돼.
색칠도 해야 하니까 그림 그리기는 5분만 집중해보자.
가능하겠어?”
아이는 잠시 고개를 들더니
단단하게 대답했다.
“네.”
얼마 뒤,
교실을 한 바퀴 돌며
아이들의 그림을 살펴보는데
아까 그 아이가
이미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색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
그 약속을 말해두고도
깜박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의도를 알아주고
믿어주는 사람 앞에서
기대에 부응하려는 힘을 낸다는 것을.
아마 평소였다면
그 아이는 더 오래
그림을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잘 표현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고,
색칠을 바로 시작하기가 망설여져
회피하는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 결국
작품을 다 완성하지 못한 채
수업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진짜 도움이 된다.
“네 의도는 충분히 훌륭해.
다만, 수업 시간 안에 완성하는 연습도 필요해.
지금은 시간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
“밑그림을 몇 분 안에 끝내면,
제 시간 안에 완성할 수 있어.”
아이를 고치는 말이 아니라,
아이의 의도를 인정한 채
방법을 제안하는 말.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은 아이는
이전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아이를 움직이는 말은
언제나
아이의 편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