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면 숲이 안 보인다

by 온길

김정운 교수님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읽다가
이 문장에서 멈췄다.


불안하면 숲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마음이 불안할 때 우리는
전체를 보지 못한다.


앞에 놓인 작은 문제 하나에
시야가 붙잡힌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
눈앞의 선택,
곧바로 나타날 결과.


터부시할 것들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이다.


숲을 본다는 것은
조금 물러서서

지금의 일을 바라보는 일이다.




돌아보면
내가 가장 좁은 시야로 세상을 보던 순간들은
대개 불안이 클 때였다.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에,

지금의 선택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더 조급해지고
더 가까이 들여다보게 된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결국
나무 하나만 보게 된다.


숲은
조금 물러설 때

비로소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안은 그 거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래서

세상을 더 단순한 공식으로 이해하려 한다.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공하고,
지금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하며,
원인을 알면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종종
이런 믿음을
당연한 질서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책에서는
이런 예측과 통제의 인과론이
19세기의 세계관에 가깝다고 말한다.


복잡하게 얽힌 지금의 세계를
하나의 원인과 하나의 결과로

설명하려는 태도.


그것이 오히려
사람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일은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앞날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아주 단순하다.


지금 내 마음에 올라온 불안을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조용히 흘려보내는 것.


불안이 사라져야
숲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불안이 지나갈 자리를
조금 비워 두면

그때

시야가 조금 넓어진다.


숲은
사라진 적이 없었다.


내가 잠시

나무 하나에 붙잡혀 있었을 뿐.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도

거창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숲을 찾겠다며
세상을 붙잡고 애쓰기보다


숲이 보일 만큼
마음을 한 걸음 물러서는 일.


AI 생성형 이미지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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