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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떠난 뒤, 글쓰기가 남았다

외로움을 견디는 가장 따뜻한 방법

요즘 유튜브에는 고소영, 이민정, 한가인 같은 연예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엄마 유튜버'라는 것이다. 왜 이들이 다시 유튜브라는 세상 속으로 나와 활동하고 있는 걸까? 같은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점점 잃어가는 자신을 붙잡고, 잃어버린 '나'를 되살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방송 일을 쉬던 시절, 그런 마음이 부쩍 들었다. 한 달쯤은 괜찮았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괜찮지 않았다. 나를 잃어가는 느낌,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는 느낌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머무는 동안에도 그 우울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함께 일했던 PD님의 연락으로 다른 방송사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느꼈다. '나로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감각이 내 안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마음이 두근거리고, 사라졌던 나 자신이 조금씩 돌아오는 듯한 설렘이 있었다.


오늘도 평화로운 주말, 남편은 제주도 결혼식 참석 차 집을 비웠고 아이들은 친구를 만나러 각자 나갔다. 적막한 집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채, 나는 고요를 마주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아이들이 더 자라 각자의 세계로 완전히 떠나면 나는 이 외로움과 적막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아이들은 이미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작은 아이도 초등 4학년,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며 엄마에게 투덜댄다. 큰 아이는 중학교 1학년, 사춘기 특유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엄마와의 대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가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이제 가족을 위한 시간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을 위한 시간, 나를 다시 설레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작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글쓰기를 즐기며 스스로의 시간을 보내셨기에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않으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늘 자식을 돌보고 손주를 챙기며 정작 자신의 삶을 챙길 겨를이 없으셨다. 그 결과 자식과 손주들이 모두 제 자리를 찾아 떠난 뒤 남은 적막은 너무 컸다.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셨다.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나 또한 언젠가 마주할 외로움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어쩌면 그 외로움을 견딜 힘을 만드는 것, 그게 가장 건강하게 나이 드는 법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 제 삶을 살아가듯, 이제 나도 그들의 삶을 존중하며 나만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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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시간, 다시 나를 만나는 시간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이자 '다시 나를 찾는 길'로서의 글쓰기 ⓒ 이효진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일하며 글을 써 왔던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답은 결국 글쓰기였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잊고 있던 '나'를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고, 마음은 오랜만에 설렘으로 뛰었다. 그 설렘은 나에게 남아 있던 빛을 다시 켜주었다.


지금 나는 아동문학 작가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마흔아홉의 나, 이제 오십을 앞둔 나에게 글쓰기는 새로운 생명줄이자 삶의 이유가 되었다. 아이들이 점점 나를 떠나도 나는 외롭지 않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고, 각자의 세상 속으로 걸어가더라도 나는 글과 함께 여전히 내 자리에서 살아간다. 글을 쓰는 일은 외로움을 견디는 나만의 방식이자, 다시 꿈꾸게 하는 가장 따뜻한 일이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견디고, 자신만의 시간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다시 꿈꾸고,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 글쓰기는 나에게 그 길을 보여주었고, 나는 지금 그 길 위를 천천히 걷고 있다. 나를 기다리는 시간, 나를 설레게 하는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지금, 나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활발히 활동하는 엄마 유튜버, 엄마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응원하게 된다. 아이들을 위해 한동안 자신을 뒤로 미뤘던 그들이, 이제는 다시 자신만의 무대에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아이들의 그림자 뒤에 머물렀던 그들이, 이제는 세상과 소통하며 자기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다. 그들의 모습이 참 좋다. 그들의 지금의 모습이 충분히 아름답고, 나 역시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다고 느낀다. 오늘도 그들의 영상을 보며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작게 미소짓는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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