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실천한 공부
아동문학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더욱 열심히 도서관을 찾았다. 주로 어린이 책이 꽂힌 책장을 살피고, 여러 아동문학 작품을 빌려 읽었다. 한 권의 책을 오래 마음속에 되새기기보다 다양한 이야기책을 겉핥기 식으로 읽는 일이 많았다. 이번주에는 몇 권을 읽었느냐에 집중했다.
그런데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때마다 거절 메일이 돌아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뭔가 부족한 게 아닐까? 공부가 모자란 게 아닐까?" 하는 물음표가 마음에 따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책을 다시 집어 들었을 때, 이번에는 '공부하듯' 읽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공부할 때 2 회독, 3 회독을 하듯이, 책도 그렇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읽기는 여전히 독자의 자리에서 즐기 듯 읽는다. 하지만 마음에 남은 책은 2회독부터 다르게 대한다.
두 번째 읽기에서는 질문을 던진다.
"이 책 속에는 캐릭터가 몇 명이나 등장하지?"
"사건은 언제쯤 터졌을까?"
"사건은 도대체 몇 개나 배치되었을까?"
"시점은 어떤 방식을 썼지?"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마무리되었을까?"
이런 질문을 하나하나 적어가며 읽다보니, 그냥 '좋았다', '재미있었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책을 만드는 법을 배워가는 느낌이었다. 읽기와 동시에 작은 해부 작업을 하는 셈이었다.
이런 방식은 사실 낯선 것이 아니었다. 예전 방송작가 준비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좋아하던 나는, 다시 듣기 기능조차 없던 시절, 방송 시간에 맞춰 대기하다가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즉시 녹음 버튼을 눌렀다. 좋아하는 멘트를 받아 적기 위해서였다. 나는 테이프에 담긴 목소리를 다시 재생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나만의 라디오 방송 오프닝 멘트 교재였다.
또 시내 대형 서점에 가서 방송작가 관련 책들을 뒤적이다가, 원고작성에 도움이 되는 책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방송작가란 직업은 생소했고, 관련 정보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여러 차례 뒤져 겨우 손에 넣은 그 책을 여러 번 읽으며 방송 원고의 리듬과 구조를 배워갔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방송 원고 공부의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문득 대학 시절 시창작 수업의 한 장면도 떠올랐다. 당시 수업 시간에 내가 쓴 시를 교수님께 제출했을 때 운 좋게도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함께 수업을 들었던 한 친구는 달랐다. 그는 다른 대학을 다니다가 문학을 쓰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편입해 온 친구였다. 하지만 첫 작품은 교수님께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라는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다음 시간도. 그 다음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칭찬받은 시들을 모아 분석하기 시작했다. 내 작품을 포함해 교수님이 좋다고 한 시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칭찬받는 글의 스타일은 무엇일까"를 연구한 것이다. 한 달쯤 지나자 놀랍게도 그의 시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교수님도 놀라며 극착했다. 결국 나와 그 친구는 함께 대학교 신문사 주최 문학상에 입상했고 또 문학 계간지의 동인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크게 깨달았다. 어떤 길이든, 그냥 되는 건 없다는 것. 열정은 필요하지만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거기에 수반되는 꾸준한 노력과 공부가 있어야 한다. 그 친구가 내 시를 분석하며 배워갔듯, 나 역시 지금 다시 아동문학을 공부하듯 읽고 있는 셈이다.
작품을 단순히 즐기는 독자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작법을 배우고, 구조를 살피고, 시점을 연구하는 과정. 때로는 노트에 사건 전개를 따로 정리해 보기도 하고, 캐릭터가 어떤 장면에서 빛나는지를 표시해 보기도 한다. 한 번의 읽기는 독자의 즐거움으로, 두 번째 읽기는 작가의 공부로. 이런 식의 반복은 귀찮지만, 분명 글을 더 깊게 이해하게 해준다.
지금 나는 아동문학 작가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출판사의 거절은 아프지만, 그 거절이 나를 다시 공부의 자리로 이끌었다. 과거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베껴 적으며 배웠던 것처럼, 대학 시절 친구가 칭찬받은 시를 분석하며 성장했던 것처럼, 나는 지금 동화책을 다시 읽으며 길을 찾고 있다.
결국 작가의 길도 공부의 길이다. 단순히 영감만으로는 글이 완성되지 않는다. 반복해서 읽고, 분석하고, 실패하고, 다시 고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이다.
책장을 펼칠 때마다 나는 아직 배우는 학생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언젠가는 내 이야기도 어린이 독자에게 닿을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다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원고 앞에 앉는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