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투고 후 기다림
요즘은 SNS가 활발하고, 메시지는 몇 분 안에 주고받는다. 글을 올리면 바로 댓글이 달리고, 답장이 조금만 늦어도 마음이 조급해진다. 모든 것이 즉각적이고 빠른 세상이다.
하지만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나서는 달랐다. 답장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었고, 메일이 오지 않으면 '떨어졌구나' 하는 답답함만 쌓여갔다. 어떤 답이 올까? 어떤 결정이 내려질까? 긴장과 설렘 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긍정적인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출판사 대표님께서 바로 전화를 주시거나 문자를 주셨지만, 그때조차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 하셨다. 그때부터는 초조함과 두근거림이 뒤섞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 과정 안에서 나는 예전 편지 시절을 떠올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지를 고르고, 정성껏 글을 적어 우체통에 넣던 그때. 내 편지가 잘 도착했을까? 상대가 읽었을까? 답장은 올까? 그 느리고 불확실한 기다림 속에서 설렘과 긴장, 기대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아날로그 시대의 기다림은, 그 자체로 행복이자 긴장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즉각적인 소통과 달리, 기다림은 나에게 긴장과 흥분, 그리고 성취감까지 동시에 안겨주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릴 때, 수시로 메일함을 열어보며 답신을 기다리던 그 시간은 내 마음을 더욱 예민하게 또 깊이 깨어나게 했다.
글을 쓰는 일도 다르지 않다. 작품을 쓰고, 고치고, 다시 퇴고하는 과정에는 기다림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급하게 내놓는 글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숙성된 글만이 진정성을 품을 수 있다. 기다림은 곧 글쓰기의 일부이자 작가의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과정이다.
하지만 내가 20년 넘게 써 왔던 방송 원고는 달랐다. 방송 작가로서 하루하루 원고를 써야 했고, 방송이라는 특성 상 무엇보다 즉각성이 요구됐다. 뉴스와 정보를 신속히, 정확하게 전달하고, 프로그램을 빠르게 진행해야 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방송을 내보내야 했기에 글을 촉박하게 써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글은 깊이를 잃기 쉬웠고 표현도 얕아질 때도 있었다. 진행자에게 흐름을 맡기며 글의 진정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때가 많았다. 물론 방송 일을 좋아했기에 20년 넘는 세월을 그 길에서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루면서, 방송 중심의 삶에 점점 회의가 찾아왔다. 매일 원고를 쓰고, 즉시 전달하고, 적합한 인물을 섭외하고, 정보를 신속히 확인하는 일이 내 몫이었다. 모든 일이 숨 가쁘게 돌아가다 보니 다른 일에 신경 쓸 틈이 없었고, 내 삶에 여유도 부족했다. 아마 내가 방송 작가 일을 내려놓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여유 있는 삶과 마음의 평화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돌이켜보면, 늘 분주하게 돌아가던 방송 현장에서의 경험이 기다림의 가치를 알게 해주었다. 글을 음미하며 충분히 생각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것이다.
SNS의 즉각적인 반응과 비교하면, 글 속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긴장은 아이들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즉각적인 자극과 빠른 결말에 익숙한 세상에서, 한 줄 한 줄의 의미를 음미하며 기다리는 경험은 작품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아이들은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다. 늘 검색하고, 유튜브를 보고, 원하는 답만을 찾아 끝까지 글을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답을 자기식 대로 해석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글을 끝까지 음미하지 않고, 읽고 싶은 부분만 취하고 확대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최근에 SNS에 글을 올렸다가 의도와 달리 받아 들여지고, 글의 일부가 사실과 전혀 다르게 확대 해석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결국 그 글을 삭제해야 했던 그 경험은 기다림의 중요성과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했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이들이 기다림을 경험하도록 돕는 일은 중요하다. 글을 쓰고 읽는 과정 속에서, 그리고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은 설렘과 기다림은 아이들의 감정과 성장을 풍요롭게 한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 자꾸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기다림을 잃지 않고 있는가?"
기다림이 희미해진 시대일수록, 오히려 기다림은 더욱 귀한 힘이 된다. 완성된 원고도 마찬가지다. 쓰는 속도보다 고치고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이 글의 숨결을 만들어 준다. 기다림은 결코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가 살아 숨 쉬게 하는 호흡이다.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이 기다림의 호흡을 나는 아동문학 속에 담아내고 싶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