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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에서 배운 아동문학의 비밀

분석 후에 깨달은 것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아동문학 작품을 읽을 때의 내 태도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냥 독자로서 재미있게 읽던 시절에는, 이야기의 흐름만 따라가며 웃거나 감탄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때마다 거듭된 거절을 겪으면서 나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그 질문을 품은 뒤부터 책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즐기며 읽었고, 두 번째는 사건 전개와 캐릭터를 따져 보았으며, 세 번째에 이르러서는 작가가 어떤 의도로 구성을 만들었는지까지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석을 반복하다 보니, 지금껏 놓쳤던 중요한 특징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깨달음- 문체의 단순함


아동문학 작품의 문장은 놀랄 만큼 단순했다. 군더더기 수식도 없고, 어려운 단어도 잘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단순함은 결코 가벼움이 아니었다. 아이 독자들이 즉시 이해할 수 있도록 함축된, 아주 정밀한 단순함이었다. 몇 문장만으로도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르게 하는 힘, 그게 바로 아동문학 문체의 본질이었다. ‘단순하게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났다.


두 번째 깨달음- 의성어와 의태어


내가 분석한 아동문학 책들 속에는 늘 ‘쿵’, ‘펑’, ‘살금살금’, ‘반짝반짝’ 같은 표현들이 살아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표현들을 유치하다 여기고 무심코 지나쳤다. 그러나 다시 읽으며 깨달았다. 아이들에게는 이런 소리가 바로 세계였다. 소리 하나로 긴장감이 생기고, 몸짓 하나로도 캐릭터가 살아난다. 의성어·의태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장면을 가장 생생하게 살려내는 힘이었다.


세 번째 깨달음- 글과 그림의 호흡


아동문학은 본질적으로 글과 그림이 함께 존재하는 장르였다.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작가들이 문장을 쓰는 단계에서 이미 그림을 고려한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어떤 부분에서 컷이 나뉘고, 어떤 장면이 그림으로 강조될지를 글만 읽어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알았다. 아동문학 글쓰기는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림 속에서도 살아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글쓰기여야 한다는 것을. 그림을 염두에 둔 문장이야말로 진짜 아동문학 문장이었다.


예전에 편집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작가님께서는 방송작가로 오래 활동하셔서 그런지, 문장만 읽어도 장면이 그려집니다.”


그 순간 나는 방송 원고를 떠올렸다. 특히 TV 원고는 라디오와 달리 장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영상과 그림이 있어야 메시지가 완성되고, 취재와 제작도 가능하다. 편집자의 말은 결국, 글과 그림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내게 다시 일깨워준 셈이었다.


비슷한 이야기는 다른 출판사 관계자에게서도 들었다.


“아동문학은 그림과 글이 함께 호흡하는 장르입니다. 그림이 글을 제대로 받쳐주려면 단조로운 문장은 선택받기 어렵지요. 특히 초등 저학년을 독자로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방송과 아동문학 사이의 닮은 점이 선명해졌다. TV가 영상과 글이 조화를 이루어야 메시지가 힘을 얻듯, 아동문학도 글과 그림이 함께 살아날 때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네 번째 깨달음 – 친근한 캐릭터


마지막으로 흥미로웠던 건 캐릭터였다. 많은 작품에서 등장하는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동물 캐릭터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동물이 많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가장 친밀하게 느끼는 존재가 바로 동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아이들의 감정을 대리해 주고, 친구이자 모험의 동반자가 된다. 그러니 동물 캐릭터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아이들이 세계를 경험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분석.jpg 분석하며 정리하기


글을 다시 쓰게 하는 힘


이런 분석을 통해 나는 조금씩 내 글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은 이야기의 힘에만 의존해 글을 써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내가 읽고 배운 것들을 의식적으로 녹여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문장을 단순하게 다듬고, 의성어·의태어로 장면을 살리고, 그림을 고려하며 글을 쓰고, 아이들에게 친근한 캐릭터를 세워야 한다.


공부와 분석은 결코 글쓰기를 가두는 족쇄가 아니었다. 오히려 상상의 날개를 달아 주는 과정이었다. 아동문학 작가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막막하지만은 않다. 드디어 내가 제대로 된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작은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그 확신은 거듭된 거절 속에서도 다시 원고를 열어 보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공부하며 얻은 이 깨달음들이 앞으로 내 글을 어떻게 바꿀지, 나 스스로도 궁금하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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