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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와 그림 사이에서

아동문학작가로 첫 발을 떼며 마주한 문해력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아이들은 책을 많이 읽는다. 지역 도서관은 예전보다 훨씬 발전했고, 부모들의 관심도 크다. 아이에게 필요한 책이라면 아낌없이 사 주고, 도서관에 가면 무료로 얼마든지 빌려볼 수도 있다.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독서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들어 아이들의 문해력이 화두가 되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데도 정작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특히 초등 시기의 독서 환경에 주목한다. 초등학생들이 접하는 책은 대부분 그림이 풍부하다. 문제는 글보다 그림에 의존하며 책을 읽는 듯 보이는 아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눈으로 글자를 쫓지만 머릿속에서 의미를 연결하지 못하거나, 그림만 보고 대충 내용을 짐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동문학 출판 투고를 진행하면서 나는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판사에서는 원고만큼이나 그림을 우선시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아이들이 책을 선택할 때 그림의 수준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수준 높은 그림을 요구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정교한 그림을 풍부히게 넣어야만 요즘 아이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각 콘텐츠에 민감한 요즘 아이들의 취향을 반영한 전략인 셈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 글과 그림을 함께 즐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글에 집중하며 깊이 읽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글보다는 그림만을 훑어보고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활자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그림에만 의존하는 독서 방식은 결국 영상 콘텐츠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문제를 직접 가르치는 현장에서 확인한 적이 있다. 글쓰기 수업을 함께 해 나가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을 때 주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더니, 상당수가 그림 위주로 보고 대충 훑어서 넘긴다고 대답했다. 신문 수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사 내용을 꼼꼼히 읽지 않고 사진만 보고도 문제를 풀어내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글을 통해 의미를 해석하기보다 이미지를 단서 삼아 감으로 답을 찾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림이 많은 창작동화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 작가들의 상상력이야말로 아동문학을 풍성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은 단순히 글을 옮겨 놓는 것이 아니다. 그림 작가들은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글에서 다 담지 못한 세계를 이미지로 확장해 준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그림이 글을 뒷받침하는 것을 넘어 또 다른 상상의 장을 열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 속에서 나 역시 독자로서 새로운 상상을 하고, 아이들도 글과 그림을 오가며 상상력을 키운다.


빽빽하게 이어진 검은 글자들 사이에 놓인 그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림은 아이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할 틈을 제공한다. 나는 바로 이 점에서 그림과 글이 서로를 보완하는 힘을 느낀다. 그렇다면 그림을 많이 담은 책 속에서도 충분히 문해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핵심은 책을 단순히 '많이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책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지어 그림에만 더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라 해도 괜찮다. 그렇다면 먼저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된다.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은 어떤지, 그림이 말하지 않는 뒷이야기는 무엇일지 묻다 보면 자연스레 글로 시선을 이어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림이든 글이든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느냐의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의미를 읽어내는 연습'을 하고 그것이 곧 문해력을 키우는 토대가 된다.


아동문학 작가로 발을 내딛은 지금, 나는 단순히 이야기를 짓는 것을 넘어 아이들의 문해력에 대해서도 많은 물음과 고민을 안게 되었다. 글과 그림이 어떻게 어우러져 아이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그 과정 속에서 문해력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요즘 나는 아동문학 속 그림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 글자마저 하나의 그림처럼 보일 때가 있다. 글자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마치 새로운 이미지가 떠오르듯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이들도 언젠가 자신만의 아동문학 작품을 만나 가슴 속에 '쿵' 하고 자리 잡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아이들에게 글자는 더 이상 딱딱한 활자가 아니라, '핑퐁핑퐁' 오가며 상상력을 자극하고 '콩닥콩닥' 뛰는 마음을 담아내는 살아 있는 언어가 될 것이다.


나는 바로 그 순간을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활자가 그림처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아동문학 작가로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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