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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Feb 19. 2024

비, 또 월요일

이백 예순여덟 번째 글: 간사한 마음

어젯밤에 비가 오는 걸 보고 어쩐 일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확히 얼마 만에 내리는지 세어보진 않았으나, 하늘을 보고 있자니 꽤 운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묵은 때가 조금은 씻겨져 내려간다는 느낌도 있었고요. 즐거운 마음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비를 떠올리면 거추장스럽다는 이미지가 먼저 생각나는 저에겐 꽤 이례적인 일이긴 합니다.


그래도 설마 했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 때까지만 해도 눈을 뜬 아침까지 비를 보게 될 거란 생각은 못했습니다. 전날 내린 것만 해도 충분한데 다음 날 출근 때에도 여전히 비가 온다는 사실은 제 계산엔 없는 일이니까요. 더군다나 오늘은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잖습니까? 딴 날도 아니고 월요일에 뜬금없이 비라니요?


사람의 마음이 이리도 간사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아니, 사람 운운할 것까진 없습니다. 그냥 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젯밤에 잠시 나갔다가 젖은 우산을 펼쳐 집 앞에 두고 난 뒤, 아침에 돌돌 말아 가방에 꽂으려다 아직도 비가 온다는 걸 알고 나니 괜스레 신경질이 나더군요. 적어도 제겐 비가, 일과 시간 중엔 내리더라도 출퇴근하는 시간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니까요.


한때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릴 때 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 장관을 보겠노라고 말입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더욱 좋고요. 거창했던 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어김없이 비는 내립니다.


이제 기차에 오르려 합니다. 20분 뒤 비가 멈추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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