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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Mar 13. 2024

안갯속에서

이백 여든여덟 번째 글: 앞이 잘 보이지 않네요.

날이 좀 풀리는가 싶더니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이 끼었습니다. 지표면 가까이에 아주 작은 물방울이 김처럼 부옇게 떠 있는 걸 두고 안깨가 끼었다는 표현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주변 공기가 많이 찹니다. 기차에서 내려 얼마간을 걷고 있자니 마치 샤워장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당장 몇십 미터 앞이 내다 보이지 않습니다.


문득 지금 저는 저의 길을 잘 가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 안개처럼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없이 헤매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원래 자기의 모습은 자기가 볼 수 없는 법입니다. 장기나 바둑의 경우가 그러하듯 직접 대국에 임하고 있는 사람보다는 옆에서 판세를 지켜보는 이에게 그 수가 더 잘 보이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근처에 있는 누군가에게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냐'라고 묻는 것도 우스워 보입니다.


안갯속을 헤매고 다니는 건 그리 좋은 일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옷이 젖는 것도 문제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 스산한 기운이 온몸을 긴장하게 합니다. 그래서 안개에 휩싸였다고 생각되면 얼른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 뿌연 대기를 뚫고 나와야 비로소 자신이 제대로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을까요? 뭘 하는지도,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한창 안갯속에서 헤매고 있을까요, 아니면 드디어 이젠 안개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그도 아니라면 짙은 안개를 앞두고 넋을 잃은 채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하는지 그저 막막해하며 바라보고 있는 중일까요?


지금은 당연히 안개가 걷혔습니다만, 아침에 쓰던 글을 이어 씁니다. 글을 맺으려니 뭔가가 덜 한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몇 줄 더 적어보려 합니다.


늘 안개를 보고 있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안개를 볼 때면 어딘지 모르게 몽환적인 기분도 들고, 약간 과장하자면 동화 속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듯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그런데 이 느낌이 금세 뒤집힐 때가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 안개가 드리워져 있어서 그 한기운데를 뚫고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될 때입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 서로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른 건 쉽게 이해가 되는데, 같은 사람이 한 가지 대상을 두고도 생각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어쨌거나 반갑지는 않았다고 해도 오늘 아침에 낀 안개 덕분에 또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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