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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13. 2024

진지한 농담

0640

내일을 살다가 어제 죽은 사내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동해에서 막 떠오르는 해를 건져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 서해 깊은 심해에 묻는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하곤 했다.


이 지루한 반복을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방법과 수단의 변화에 있었다.


갓 솟아오른 해를 채에 걸러 불순물을 버리고 순수한 해의 붉은 자위만을 급속 냉동해서 신선 멸균 차량에 실어 나르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뽀얀 붉은색이 고와 그 빛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커다란 찜기에 넣고 반숙한 채 소쿠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나르기도 하고


황사에 오염된 해가 떠오르는 날에는 들기름에 튀기다시피 후라이를 해 주머니에 구겨 넣고는 어슬렁어슬렁 나르기도 했다.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


주위에서 도와주려 해도 마다하고 홀로 부지런하던 그의 행방이 묘연하다.


일방적으로 살아온 이의 일방적인 실종은 여러 소문을 낳고 있다.


그는 내일 죽었어
아니야 그는 어제 죽을 거야


현재는 두 개의 추측이 팽팽한데 서둘러 살았으니 이미 죽었다는 측과 섣불리 죽었으니 여전히 살아 있다는 측이다.


소수 의견이지만 밤마다 달을 옮기는 것을 봤다는 이들도 있다.


잦은 부주의로 시력을 잃어 소일거리를 밤시간대로 조용히 옮겼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예전의 체력과 집중력이 아니어서 수시로 찌그러진 달을 보면 이전의 사내가 그립고 안쓰러운 것은 어제 오늘의 근심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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