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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Nov 12. 2023

신령한 나무

0518

주말 오후를 산책하다 우연히 어느 작은 갤러리를 만났다.

그림이 아닌 사진전이다.

투명한 통창 너머로 보인 작품은 그림 같은데 사진이라니 확인하고픈 호기심이 일었다.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보니 세밀화 같은 사진이 분명하다.

화선지나 캔버스에 인화한 탓에 그리 보였던 것이다.

진짜 살아있는 나무를 찍은 건가요

한 켠에 나무처럼 앉아 있던 작가가 다가와 가을낙엽소리 같은 고요한 다정함으로 작품을 설명해 주었다.

새벽에 인공 빛을 이용해 경주 곳곳에 있는 수백 년 살아온 당산목들을 카메라에 담아냈다고 했다.

보다 신령스러운 신비를 두른 고목들의 모습을 얻기 위해 잎이 떨어진 시기를 기다렸다고도 했다.

얼마나 많은 영겁의 시간들을 견디며 한 자리를 지켜온 나무일까.

얼마나 많은 사연의 인간들의 기도를 받아 안아온 비밀의 고해소같은 장소였을까.

작가는 그 신비스러운 당산목의 실체와 내면을 고스란히 담아내려면 잎을 다 떨구어낸 비움의 시간과 계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명의 나무'


작가는 그러한 나무들을 이렇게 부른다.

어쩌면 생명으로 이끄는 나무이고 생명에로의 나무를 일컫는 것이리라.

작가는 거기서 더 나아가 나무의 불멸을 한옥에서 발견한다.

고택의 벽과 대문을 포착해 나무의 생명순환을 나지막하게 웅변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건축에서의 나무들의 그림빛과 결을 놓치고 외면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나무들은 죽어서도 죽지 않고 생명체인 인간을 둘러싸고 또 다른 삶을 위무하고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사진전은 이달 18일까지 서울 갤러리 A에서 펼쳐진다.


https://brunch.co.kr/@voice4u/156




사진-이순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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