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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Mar 26. 2024

첫 단추

2024년 3월 26일 화요일, 흐림


모든 건 첫 단추 꿰기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막상 할 때는 몰라도 단추를 하나 올려 채우거나 내려서 잠그면 전체적인 옷매무새가 틀어지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옷을 잡아 뜯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이미 채운 단추를 다 풀어 젖혀야 한다. 하나하나 각자의 위치에 맞는 홈에 단추를 밀어 넣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는 다시 거울을 반듯이 볼 일이다. 제대로 채우긴 했는지, 아니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는지...... 제대로 되었다면 마음 놓고 외출해도 된다. 다만 또 잘못되었다면 이 단순한 작업을 올바르게 될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단추를 잘못 꿰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모르는 채 23년을 살아왔다. 그것도 아니라면 단추를 잘못 채운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나, 이건 실수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곧 그간에 살아온 그 시간들이 깡그리 부정당하는 것과 같게 된다. 누구든 폼 나고 또 멋지게 사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폼 나고 멋진 삶은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에 있어서 첫 단추를 잘 끼운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23년 전 나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어떡해야 할까? 옷을 통째로 잡아 뜯으려니 용기가 없고, 다시 처음부터 단추를 풀어 채우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려 힘조차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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