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반납함
삼백 열 번째 글: 귀찮은 하루입니다.
오늘은 조금 늦게 일어났습니다. 일요일이기도 하고, 어제의 여파 탓에 편히 쉬고 싶었으니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집콕'이 일상인 저에게 하루 만에 서울을 다녀오는 건 확실히 무리였습니다. 걷고 또 걸었으니 발바닥이 남아날 리가 없지요. 작은 물집도 몇 개 생겼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나 몇 가지 밀린 일을 해치우고, 또 집을 나설 생각입니다. 특별한 약속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공공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사람이 화장실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하지요. 저도 영락없이 그 심리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읽고 싶다며 바리바리 빌려 올 때는 언제고 시일이 지나 책을 반납할 때면 늘 귀찮아지니 말입니다.
사실 지금 이 시각은 도서관에 가봤자 책을 빌릴 수 없습니다. 평일보다는 주말에 더 일찍 문을 닫기 때문입니다. 오후 5시만 되면 운영을 하지 않으니 대출하지 않고 오늘처럼 자동반납함에 책만 넣고 와야 할 때는 더 귀찮은 법입니다. 그래도 몸을 일으켜 나가야 합니다. 책을 빌리거나 반납하는 건 별일이 아닌 것 같아도 이 역시 하나의 약속입니다. 약속이란 건 어겼을 때 그에 대한 대가가 반드시 따르는 법입니다. 책을 연체시키면 꼭 그 기간에 읽고 싶은 책이 생긴다는 사실을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에 어지간해서는 반납 기일을 지키려 합니다.
꾸역꾸역 가서 자동반납함 앞에 섰습니다. 집에서 나서기 전엔 그렇게 오기 싫었지만, 무거운 가방을 내리니 어깨가 한결 가벼워집니다. 적어도 집으로 돌아갈 때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하고 나면 주중에 읽고 싶은 책이 생겼을 때 거리낌 없이 도서관으로 발길을 향할 수 있으니까요.
어쨌건 간에 또 이렇게 일요일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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