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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May 06. 2024

야속한 세월

2024년 5월 6일 월요일, 흐림


어제 전국적으로 비가 와서 대한민국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다소 슬픈 어린이날이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쨌거나 그날은 지나가고 말았다. 물론 어제 날씨가 궂었으니 그나마 어제보다는 날씨가 더 좋은 오늘 하루, 어린이날 기분을 낸다고 어쩌면 분주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최소한 집에 어린이는 없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어린이날이 되어도 큰 감회는 없다. 다만 언제 저만큼 컸나 싶을 정도로 어른이 다 되어버린 두 아이들을 보면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긴 한다.


가끔씩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말을 안 듣고 애를 먹이긴 해도 언제나 어린아이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없던 건 아니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이 가장 사람다울 때가 바로 어린이일 때이고, 인간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상태도 바로 이때가 아닌가 싶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훌쩍 크고 나니 솔직히 재미가 없다. 더는 재롱을 피우지도 않는다. 뭔가가 필요해서 아양을 떨거나 콧소리를 내거나 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이젠 다 컸다고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모습은 내게도 그 아이들을 더는 아이처럼 대할 수 없게 한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해도 이젠 어른 대 어른으로 대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이럴 때 아마 세월이 야속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내 생각처럼 언제나 시간을 가둬 둘 수는 없는 일, 아이들이 저렇게 나이를 먹어버린 지금, 나 역시 훌쩍 나이를 먹어 버렸다. 가고 싶은 곳은 흘러넘칠 정도로 많아도 정작 그 어디에서든 오라는 곳은 없다. 나이가 어려 철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젠 어느 만큼은 철이 들어 어딜 가서든 민폐를 끼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어쩌면 어딘가에 가서 곁다리 하나라도 슬쩍 밀어 넣겠다는 생각 자체가 민폐가 되어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직 멀었다고는 해도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40년은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무심코 꺼냈다가 그때까지 살면 자식들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된다는 아내의 말에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했었다. 한 발 양보해서 20년을 떠올리니 어딘지 모르게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정도는 하고 생각하니, 요즘 같은 백세시대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 같아도 과연 그때까지 살아 있는 걸 누가 반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미래의 일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다만 오늘따라 세월이 참 야속하단 생각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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