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씁니다.
삼백 서른한 번째 글: 소설 쓰고 있습니다.
저는 소설을 씁니다. 요즘도 소설을 쓰고 있는 데다 이미 써놓은 것도 적은 수는 아니니, 제가 소설을 쓴다는 말이 명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등단한 적은 없으나, 단편 열네 편과 네 편의 중편, 그리고 장편도 두 편을 썼으니, 제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 맞긴 합니다.
그렇지만 전 어딜 가서 소설 쓰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말을 꺼냈다가 대뜸 상대방이 저에게 단행본으로 나온 소설이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요. 소설가로 공인받은 적이 없는 저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꾸준히 소설을 씁니다.
명색이 소설을 쓴다고 하면서도 전 아직도 플롯이 뭔지 모릅니다.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어느 유형의 시점이 더 잘 어울리는지도 알 턱이 없습니다. 주변 배경을 묘사할 때도 어떻게 써야 되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 어떤 것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전 늘 소설을 씁니다. 아니, 소설을 쓴다고 믿으며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무슨 소설을 쓰냐고요?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씁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습니다. 판타지를 씁니다. 미스터리도 씁니다. 또 가끔 순문학 계열의 소설도 씁니다. 작품의 길이 따위도 제겐 고려의 대상이 안 됩니다. 기본적으로는 단편의 분량으로 씁니다. 그러다 쓸 내용이 많아지면 어느새 중편이 됩니다. 그보다 더 할 말이 많으면 장편소설로 둔갑합니다.
어떻게 쓰냐고요? 글을 쓰다가 혹은 책을 읽다가 어느 날 문득 어떤 소재가 떠오르거나 생각 나는 인물이 있으면 곧장 소설 쓰기에 돌입합니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습니다. 스토리보드 같은 것에도 저는 의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을 어떤 식으로 쓰겠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또 장면이나 상황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인물들이 출현하곤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소설을 쓰는 방법으로 습작을 거론합니다. 소설이란 특정한 형태의 글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지 그 감을 익혀 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전 습작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문장이 발전 없지 않느냐고 해도, 제가 구상한 내용으로 한 편이라도 더 제 손으로 쓰려고 합니다.
그렇게 쓰다 보니 작품성이 있을 리 없습니다. 제가 볼 땐 충분히 제 소설이 흥미롭게 읽히지만, 타인의 눈에도 그렇게 비칠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저는 스토리의 완결 자체에 의미를 두고 소설을 쓰는 셈이 됩니다. 최소한의 재미라도 보장된다면 좋겠지만, 소설 쓰기의 기본이 안 된 저로서는 가히 넘보기가 쉽지 않은 경지입니다.
일전에 제가 쓴 소설을 읽은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이게 무슨 소설이냐고 했습니다. 고작 이런 걸 두고 소설 쓴다는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런 소설은 나도 쓰겠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겁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어느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게 소설이라는 겁니다. 전 오직 그것 하나만 믿으며 지금도 소설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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