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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May 26. 2024

그놈이 그놈, 그년이 그년

제목이 좀 거시기해 보이는지요? 여기에서 말하는 '그년'은 당연히 욕의 의미로 사용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일반 명사의 하나로 쓸 뿐입니다. 또 따지고 보면 남자를 대표하는 말인 '놈'의 반대 개념으로 쓰고 있을 뿐입니다. 다소 비속어로 들려 어감은 좋지 않아 보이지만, 한쪽에만 이런 말을 쓰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것이니까요.


얼마 전 사적인 자리에서 '결혼'을 화두로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함께 나눈 사람은 공교롭게도 남자 둘, 여자 둘이었습니다. 흥미로웠던 건 결혼한 지 각각 23년, 15년, 10년, 그리고 8년이 경과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중에서도 남자 두 사람은 23년과 16년이라는 결혼생활을 했고, 여자 두 분은 13년과 8년째 접어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충분히 예상하다시피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각자의 배우자들의 흉을 보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얘기의 특성상 본의 아니게, 우리 그이는 어쩌니저쩌니, 우리 아내는 이렇니 저렇니 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먼저 여자 두 분은 가사 분담이나 아이들의 양육 문제에 있어서 우리 두 남자에게, 당신들은 집에 가면 얼마 만한 역할을 하고 있느냐며 물었습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답변했습니다. 가면 이런저런 집안일들을 하고, 아직 한창 아이를 키우고 있는 15년 차의 남자분은 육아에 있어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그 남자분도 자신이 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허풍을 떨 스타일은 어닙니다만, 저 또한 한 치의 거짓 없이 딱 하고 있는 만큼만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의 얘기를 들은 두 여자분이 입을 모아 얘기하더군요. 부럽다고 말입니다. 과연 자기들의 남편은 언제쯤이면 우리처럼 할까, 하는 의문을 갖더군요.


아마 시간이 조금 더 흘러야 하지 않을까요? 


마치 대답을 맞추기라도 한 듯 우리 두 남자는 말했습니다. 두 여자분은 지금으로서도 충분히 힘든데,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지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참, 여기에서 괜스레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이 있어서 언급할까 합니다. 아마 그 두 여자분의 남편들도 시쳇말로 '집구석에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런 막 돼먹은 남편'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기준치가 높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남편들이 하는 것에 비해 다른 남자들이 하는 것이 더 크게 보여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꼭 말해두고 싶습니다.


사실 이렇게 묘한 자리가 이루어지면 남자의 입장에선 그다지 할 말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남자의 관심사를 생각했을 때 함부로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맞은편에 있는 여성들에게 꺼내기는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저 일반적인 얘기를 하는 것에서 그치곤 합니다. 그렇다 보니 남자들이 꺼낸 얘기는, 아내가 밖에 나가면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할 수 없더라는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애교가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물론 우리 두 사람 앞에 앉아 있는 두 여자분도 충분히 친절하고 상냥하며 가끔은 애교까지 섞어가며 말합니다. 사심이 있어서 그러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괜히 자기 이미지에 먹칠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창 얘기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누가 먼저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가지 질문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다시 태어나 또 결혼을 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할 것인가였습니다. 물으나 마나 네 사람 모두 당연하다는 듯, 'No'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다시 태어나면 결혼할 것인가였습니다. 그것 역시 대답은 동일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은 굳이 필요 없었습니다. 사람의 상황이나 생각 자체가 다르고, 최소한 각자의 배우자의 성향은 달랐지만, 사람이 모두 입을 모아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놈이 그놈이고, 그년이 그년이다.


지금의 배우자가 아닌 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면 처음 얼마간은 좋을지 몰라도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과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굳이 이런 건 경험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만한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는, 조금은 다른 놈이나 다른 년이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하고는 크게 웃고 말았지만,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라는 걸, 그럴 가능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걸 우리가 모를 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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