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치고써 May 30. 2024

내 남은 여생

삼백 서른아홉 번째 글: 얼마나 더 살게 될까요?

저는 1972년에 태어났습니다. 집의 나이로 따지면 올해 쉰셋, 뭐, 만 나이가 어쩌니 저쩌니 해도 이 나이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아니고 교묘하게 한 살 더 내려진다고 해도 근본적인 것에선 변하는 게 없습니다. 느닷없이 여기에서 왜 제 나이를 밝히냐 하면, 최근 2~3년 상간으로 부쩍 늘게 된 습관이 하나 있어서입니다. 무슨 연례행사처럼 툭하면 뭔가를 헤아려 보곤 합니다. 마치 갓 입대한 군인이 제대가 며칠 남았는지 손꼽아 기다리듯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하는 아무런 근거 없는 계산을 늘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사십 대까지만 해도 굳이 그러진 않았습니다. 뭔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적어도 저의 생각 속에선 이젠 저도 늙어가는 나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일까요?


얼마 전에 아내와 별생각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자리가 있었습니다. 꼭 오래 사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얘기가 그쪽으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딱 절반 살았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짜 동갑내기인 우리가 딱 절반을 살았다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저는 100살을 넘긴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가 쏘아붙였습니다.

"뭐, 절반?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노? 적어도 우린 60% 넘게 살아온 거야."

눈치를 보아하니 그 60%라는 것도 아내가 나름은 인심을 써준 탓인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아내는 70%는 살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아내는 딱 잘라서 선을 긋더군요. 많이 살면 85세쯤이라고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다른 것에는 거의 초연하다 싶을 정도로 욕심이 없는 제가 유독 여생에 대해선 과욕을 부리게 되더군요. 물론 여생이라는 게 제가 더 살고 싶다고 해서, 혹은 최대한 오래 살고 싶다고 해서 제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저를 그윽이 보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많이 살면 이제 30년 정도만 살다 가야 안 되겠나? 더 오래 살면 애들한테 짐이 될 뿐이니까."

아내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은 뒤에 제 방에 틀어박혀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앞으로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 남은 인생 10년 ]

특별히 병이 들거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앞으로 10년은 족히 더 살게 될 것이라고 장담해 봅니다. 당연히 이것도 제 뜻대로 될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늘이 그만 살고 오라고 한다면 가야 되는 게 인생일 테니까요. 사실 10년은 짧아도 너무 짧습니다. 겨우 정년퇴직할 즈음이니 실컷 돈만 벌다가 곧장 가기엔 이 인생이 너무 불쌍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 남은 인생 20년 ]

이 정도까지도 어느 정도는 큰소리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제 주변에서 일흔을 갓 넘어 돌아가시는 분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최소한 20여 년의 세월은 제게 주어지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남은 그 20년 동안 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더는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아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남은 저의 여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몇 가지 활동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이 생에선 저와는 인연이 없는 일이란 걸 인정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 남은 인생 30년 ]

30년은 살겠지, 하며 혼자 반문해 보니 문득 자신이 없어집니다. 지금까지 50년을 넘게 살았어도 남은 30년이라는 시간도 짧은 세월은 아닐 수 있습니다. 결국은 어영부영하다 나이가 더 들어갈 테고, 입버릇처럼 말하듯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진행 속도가 체감상 훨씬 더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그 30년이라는 시간도 어쩌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확률이 높은지도 모릅니다. 괜스레 최소한 30년은 더 살 거야, 하며 큰소리를 쳐보아도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게 되는 게 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 남은 인생 40년 ]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만, 여기서부터는 저의 철저한 과욕에서 나온 계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스갯소리로 40년은 살아야지,라고 했다가 욕심이 많아도 너무 많은 사람이라는 지적을 아내에게 받고 보니, 그녀의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앞으로 과연 40여 년은 더 살까, 하는 대목에선 고개가 떨궈집니다. 그건 어쩌면 여든과 아흔이라는 각각의 낱말이 저에게 주는 무게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 남은 인생 50년 ]

네, 맞습니다. 솔직히 저는 앞으로 50년은 더 살고 싶습니다. 아무리 아내가 저에게 욕심이 많다고 손가락질해도 할 수 없습니다. 제 속마음이 그렇다는 걸 굳이 숨겨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 어느 누구라도 100세 시대 운운하고 있으니, 거기에 슬쩍 편승해서라도 50년은 더 살다 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얼마를 더 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남은 인생이 30년이 될 수도 있고, 채 안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 이상 또 살아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마음 같아선 50년은 더 살고 싶으나, 한 발 양보해서 40년은 더 있다 갔으면 싶을 뿐입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무중력의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