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 서른아홉 번째 글: 얼마나 더 살게 될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짜 동갑내기인 우리가 딱 절반을 살았다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저는 100살을 넘긴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가 쏘아붙였습니다.
"뭐, 절반?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노? 적어도 우린 60% 넘게 살아온 거야."
눈치를 보아하니 그 60%라는 것도 아내가 나름은 인심을 써준 탓인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아내는 70%는 살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아내는 딱 잘라서 선을 긋더군요. 많이 살면 85세쯤이라고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다른 것에는 거의 초연하다 싶을 정도로 욕심이 없는 제가 유독 여생에 대해선 과욕을 부리게 되더군요. 물론 여생이라는 게 제가 더 살고 싶다고 해서, 혹은 최대한 오래 살고 싶다고 해서 제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저를 그윽이 보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많이 살면 이제 30년 정도만 살다 가야 안 되겠나? 더 오래 살면 애들한테 짐이 될 뿐이니까."
아내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은 뒤에 제 방에 틀어박혀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앞으로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 남은 인생 10년 ]
특별히 병이 들거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앞으로 10년은 족히 더 살게 될 것이라고 장담해 봅니다. 당연히 이것도 제 뜻대로 될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늘이 그만 살고 오라고 한다면 가야 되는 게 인생일 테니까요. 사실 10년은 짧아도 너무 짧습니다. 겨우 정년퇴직할 즈음이니 실컷 돈만 벌다가 곧장 가기엔 이 인생이 너무 불쌍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 남은 인생 20년 ]
이 정도까지도 어느 정도는 큰소리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제 주변에서 일흔을 갓 넘어 돌아가시는 분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최소한 20여 년의 세월은 제게 주어지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남은 그 20년 동안 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더는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아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남은 저의 여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몇 가지 활동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이 생에선 저와는 인연이 없는 일이란 걸 인정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 남은 인생 30년 ]
30년은 살겠지, 하며 혼자 반문해 보니 문득 자신이 없어집니다. 지금까지 50년을 넘게 살았어도 남은 30년이라는 시간도 짧은 세월은 아닐 수 있습니다. 결국은 어영부영하다 나이가 더 들어갈 테고, 입버릇처럼 말하듯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진행 속도가 체감상 훨씬 더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그 30년이라는 시간도 어쩌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확률이 높은지도 모릅니다. 괜스레 최소한 30년은 더 살 거야, 하며 큰소리를 쳐보아도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게 되는 게 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 남은 인생 40년 ]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만, 여기서부터는 저의 철저한 과욕에서 나온 계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스갯소리로 40년은 살아야지,라고 했다가 욕심이 많아도 너무 많은 사람이라는 지적을 아내에게 받고 보니, 그녀의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앞으로 과연 40여 년은 더 살까, 하는 대목에선 고개가 떨궈집니다. 그건 어쩌면 여든과 아흔이라는 각각의 낱말이 저에게 주는 무게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 남은 인생 50년 ]
네, 맞습니다. 솔직히 저는 앞으로 50년은 더 살고 싶습니다. 아무리 아내가 저에게 욕심이 많다고 손가락질해도 할 수 없습니다. 제 속마음이 그렇다는 걸 굳이 숨겨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 어느 누구라도 100세 시대 운운하고 있으니, 거기에 슬쩍 편승해서라도 50년은 더 살다 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얼마를 더 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남은 인생이 30년이 될 수도 있고, 채 안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 이상 또 살아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마음 같아선 50년은 더 살고 싶으나, 한 발 양보해서 40년은 더 있다 갔으면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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