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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l 15. 2023

상상력의 힘

아홉 번째 글: 쌤! 이거, 거북이 같이 보이죠?

며칠 전 퇴근하려는데 반 아이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쌤! 이거, 거북이 같이 보이죠?"

어디, 어디 하며 사진을 들여다봤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온통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사진이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빚어낸 결과, 몇몇 형상들이 보이긴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혼자서 본 신기한 것을 굳이 이렇게 공유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이 기특해 보였다고나 할까? 그 성의를 생각하면 안 그렇다는 답장을 보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여기에 대해 내가 뭐라도 말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이런 식이 되지 않겠나 싶다.

"어? 정말 그렇네. **는 관찰력이 참 좋구나. 그런 걸 발견하다니!"

그렇다고 해서 시쳇말로 '영혼이라고는 1도 없는' 말을 내지를 순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하기도 뭣하다. 고작 이런 것에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아이가 보낸 사진을 다시 한번 뜯어봤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저냥 한 구름 그 자체일 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거북과 그 아이가 알고 있는 거북이, 서로 생김새가 다른 동물이 아닐 텐데 거북은커녕 그 어떤 다른 동물로도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갖다 붙인다면 어떤 새의 머리 정도는 보인다고나 할까?

아이의 순진무구한 시각이 부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새 내가 세상에 너무 때가 묻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도 한때에는 저렇게 순수할 때도 있었나 싶기도 했다.




'이래 놓고 무슨 소설을 쓴다고 그러는지......'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능력이 상상력이라고 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소설을 써야 가장 근사한 작품이 나온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모든 경험을 할 수는 없다. 적어도 경험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되 누가 생각해도 그럴싸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처럼 상상력이 결여된 사람이 소설을 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꼭 판타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더라도 소설의 본류는 상상력이다. 단지 아직 일어나지만 않았을 뿐이지,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을 떠올리는 게 상상력의 본질이란 얘기고, 그게 바로 소설이 주는 매력일 것이다. 만약 이런 상상력이 발휘될 수 없는 문학이라면, 한 권의 책보다는 차라리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게 더 낫다.

결론적으로 내게 상상력이 부족하다면 본류에서 벗어난, 본질을 잃어버린 글쓰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상상력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상상력은 현실 감각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사고 형태는 현실 감각보다는 어쩌면 상상력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허황된 사람들이 본 헛것들이 지금 우리들 세계에서는 상상력의 갤러리가 된다. 사물을 단순히 귀신으로 착각한 것을 넘어서,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동물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주작, 현무, 용, 켄타우로스, 유니콘 등이다. 이들은 심지어 실제 보기라도 한 것처럼 외양이나 특징까지 잘 알려져 있다. 조금의 회화 실력만 가미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사는 데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지만, 그 도움 안 되는 생각들이 우리의 집단무의식을 형성해 왔고,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나눈 소중한 이야깃거리들의 재료가 되었다.


간혹 TV에서 경관이 좋은 곳을 비출 때가 있다. 그때마다 거기에 살고 있는 동리 사람들이 산의 모양이나 바위 등의 모양을 두고 엎드린 호랑이처럼 보인다느니, 늠름한 장군상이라느니, 사이좋은 한 쌍의 부부 같이 보인다는 말들을 한다. 그럴 때마다 자세히 뜯어보면 정말 그렇게 보일 때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스러울 때도 더러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들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들의 태도일 것이다. 바로 그 터무니없는 믿음은 상상력에서 왔을 테다. 내 상상력에 어떠한 제한도 없듯이 그들의 상상력에도 우린 제동을 걸어선 안 된다. 


구름이 거북을 닮았다고 신기하지 않냐며 보낸 사진에 굳이 내가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똑같은 구름을 봐도 내 눈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만 그 아이의 시각이, 가장 원형적인 인간의 사고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그 아이를 불러다, 어느 부분이 거북으로 보였는지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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