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치고써 Jun 05. 2024

어떤 기념일

삼백 마흔네 번째 글: 누구에게 더 현명한 것이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2000년 6월 7일에 처음 아내를 만났습니다. 서로가 다른 환경 속에서 29년 간 각자 생활해 오다 만나게 된 사람입니다. 첫 느낌이 어땠냐고요? 전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의 속마음이야 제가 알 수 없지만, 아내보다는 제가 아내를 더 좋아한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첫 만남에서 우린 본의 아니게 호구조사까지 마쳤습니다. 반드시 상대방과 결혼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해도, 스물아홉이나 되어 사람을 만나는데 잠깐의 즐거움이나 경험을 쌓기 위해 만날 수는 없으니까요. 대구 바닥이 좁은 감안한다면 직접적인 인연은 없어도 몇 개의 다리만 건너면 알 만한 사람이지 않을까 했습니다. 이리 걸치고 저리 엮어봐도 둘 사이의 접점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제 친구 녀석이 아내와 초등학교 동창이더군요. 뭐, 어쨌건 간에 당시 아내는 저에게, 또 저는 아내에게 생면부지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둘은 누군가가 소개를 해서 만난 사이입니다. 우린 서로를 몰랐지만, 그 사람이 보기엔 아내에겐 제가 그리고 저에겐 아내가 꽤 잘 어울린 듯합니다. 살면서 종종, 그때 그 사람은 왜 그런 근거 없는 판단을 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그로부터 1년 5개월 뒤에 우린 결혼을 했으니,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의 안목이 영 잘못된 건 아닌 셈입니다.


결혼 23년 차, 가끔씩 우린 서로에게 그런 말을 하곤 합니다. '내가 아니었다면 아마 당신 같은 사람은 평생 혼자 살았을' 거라고 말입니다. 사실 여부의 관계를 떠나 그건 분명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딜 가서 이렇게 낭창하고 속 편하게 사는 저 같은 남자를 맞춰 줄 여자를 제가 만날 수 있을까요? 또 아내는 도대체 어딜 가서 불같이 잔소리를 퍼붓고 기분이 손바닥 뒤집듯 하는 여자의 비위를 맞춰 줄 남자를 만나 살 수 있을까요? 결국 그렇게 보면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세상에 둘도 없는 인연임을 증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부부의 연만큼 질긴 건 없는 듯합니다. 하긴 전생의 원수가 다음 생에 부부로 만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미 이번 생애에 부부로 만났으니, 만약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더라도 적어도 우리 두 사람은 또 만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쩌면 그것 하나 만으로도 이번 생은 충분히 버텨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레는 우리 부부가 만난 지 8767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마음 같아선 만 원짜리 8767장이라도 주고 싶습니다. 모래사장에 널린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남자들 속에서 딱 저를 꼬집어 데리고 살아준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만에 저 같은 사람과 그 긴 세월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 합니다. 이왕 말을 꺼냈으니 약간은 낯 간지러우나 사랑한다는 말도 할까 합니다.


물론 아내에게서 똑같은 반응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걸 바란다면 저는 하수이고, 지금껏 헛 살아온 셈이 됩니다. 사랑이 일방통행로가 되어선 안 될 테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 당신도 당연히 나를 사랑해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저에 대한 아내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 하는 건 제가 관여할 사항이 아닙니다. 제 마음을 표현할 수만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족한 것이니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이 굴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