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계속 눈이 감기려 합니다.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스마트폰을 열어 브런치스토리 앱에 접속합니다. 오늘의 글쓰기를 시작해 볼까, 하던 마음이 시들시들해지고 있습니다. 쓸 내용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손가락을 움직여 타이핑하려니 그조차 힘겹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 같아선 아우 데라도 누워 잤으면 싶습니다. 다행히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오늘은 앉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날 서서 하는 건 생각 만으로도 고역이니까요.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마음만 그럴 뿐 멍한 상태가 지속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마음속으로 또 한 번 다짐합니다. 좌석에 기대어 졸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오랜만에 주변을 둘러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에서 절반 정도는 눈을 감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폰으로 뭔가를 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과연 사람들이 뭘 하며 시간을 보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같은 객차 내에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띕니다. 책 제목이 얼핏 보였습니다. 공자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책인 듯했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는 책에 푹 빠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보기가 참 좋았습니다. 저렇게 읽는 것이 진짜 책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오늘은 먼저 글을 쓰지 말고 책부터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괜히 마음이 쫓길 필요는 없습니다. 편안하게 책을 보다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써도 충분하니까요.
연신 눈이 감기고 있어서 과연 책이 눈에 들어올까 했는데, 의외로 집중이 잘 되었습니다. 꽤 편안한 상태로 활자를 따라갑니다. 눈앞에 펼쳐진 글자를 해독합니다. 이어 행간의 의미도 더듬어 봅니다. 잠시 눈을 감고 방금 전에 읽은 대목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피곤한데도 두뇌가 회전한다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모처럼 만에 해보는 제 나름의 일탈입니다. 늘 아침에는 글을 쓰면서 하루를 시작했으니까 말입니다.
기차가 들어오는 걸 보며 책을 가방에 넣었습니다. 충분히 머리가 예열된 상태이니 이제는 글을 써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뚜렷이 떠오르는 글감은 없지만. 방금 전까지 제가 한 일들을 글로 써 보면 되겠더군요. 누가 읽어도 근사한 글감이 준비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사람이라면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글감이 있든 없든 어떤 상태라도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붓 가는 대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입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소리도 없는 가랑비라도 하루 종일 맞고 돌아다니면 옷이 흠뻑 젖는 법입니다. 방금 전 이렇게 해서 저는 또 하나의 작은 티끌을 손에 쥐었습니다. 가랑비를 온몸에 맞았습니다. 학교로 향하는 흔들리는 버스 안, 오늘도 저의 하루는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