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치고써 Jun 19. 2024

새 소설 쓰기

145일 차.

아침에 145번째 글을 쓰려고 휴대폰을 열었습니다. 뭘 쓸까 하는데, 문득 떠오른 낱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연포탕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마침 오늘 아침 식사로 먹고 나온 겁니다. 아내가 정성스럽게 끓여준 것입니다. 맛있게, 그리고 든든하게 먹고 나와 산뜻하게 출발한 아침이었습니다. 모처럼 만에 속이 든든해서 그랬는지 머리도 맑아지는 기분이었고, 어쩐지 글도 잘 풀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뜻하지 않게도 글을 쓰려는 찰나에 다른 방해 요소가 끼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글을 쓸 때 방해 작용이 생기면 무시하기 일쑤입니다만, 아침엔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소설의 소재가 떠오르는 중이었거든요. 몇 분 정도의 시간 동안 몇 가지 낱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이럴 때에는 무조건 그 단어를 기억해야 합니다. 휴대폰의 메모장을 열어 사라지기 전에 그 낱말들을 메모했습니다. 뭐, 굳이 이름을 거창하게 붙이자면 제가 한 일의 시작은 단어 연상 작업쯤에서 비롯된 게 아니겠나 싶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아침, 새 소설의 첫 회를 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적어볼까 합니다.


연포탕이 떠오르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몇 개의 낱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녔습니다. 앞서 말했듯 휴대폰의 메모장에 하나하나 옮겨 적었습니다.


연포탕, 아침식사, 아내, 남편, 결혼생활……


거기에 마침 군에 간 아들 녀석이 집에 와 있는 상태라 자연스럽게 연상된 낱말 속에 아들이라는 말도 포함시킵니다. 이젠 연상된 낱말들을 하나하나 얼기설기 엮어야 합니다.


연포탕, 아침식사, 아내, 남편, 결혼생활, 아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떤 순서로 낱말들을 연결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 각각의 낱말이 배치된 위치를 하나의 문단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낱말들을 중심으로 몇 개씩의 문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최초의 문장 하나가 튀어나와야 합니다. 굳이 여기에서 제가 진리처럼 통용되는 ‘첫 문장’이라고 말하지 않고 ‘최초의 문장’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첫 문장의 중요성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게 위함입니다. 글쓰기에 있어서, 특히 이야기를 쓰는 데 있어서 그 어떤 문장도 첫 문장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저에겐 작품의 '첫 문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글쓰기란 결국 최초의 문장에 다음의 문장을 더하고, 다시 거기에 다음다음의 문장을 더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쨌건 간에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새 소설의 최초의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식전 댓바람부터 거실에서 얼쩡대는 민철의 발소리에 서우는 눈을 떴다.


민철과 서우라는 등장인물이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민철은 한 집안의 남편이고, 서우는 민철의 아내입니다. 이제 곧 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더 많은 사람들이 속속 등장할 것이고, 그들은 몇 개의 사건들을 만들어 낼 것이며, 그 사건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나름의 갈등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늘 아침의 저처럼, 한 남자가 있는데 아내가 정성스럽게 끓여 준 연포탕을 아침식사로 먹고 출근했다,라는 식으로 글을 쓰면 그건 아무런 갈등 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에서의 중요한 요소 중인 ‘갈등’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 일어난 일과는 정반대로 상황을 비틀어 봅니다.


그래서 서우를, 남편인 민철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아들만 신경 쓰는 한 여자로 둔갑시킵니다. 그런 서우는 아들에게 먹이기 위해 지난밤에 끓여놓은 연포탕을 민철이 먹을까 봐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연포탕이야 다 먹으면 또 끓이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무런 갈등이 빚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최소한 입속에 들어가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철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서우로 만들어야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그 결과 남편인 철민은 아침에 연포탕을 꼭 먹고 출근하고 싶었지만, 아내인 서우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었던 지라 쓴 입맛만 다신 채 빈속으로 출근해야 했습니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그렇다면 왜 그렇게 서우가 민철이 연포탕을 먹는 게 못마땅한지 이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는 법입니다. 심지어 법만 무섭지 않다면 민철이 먹는 음식에 아무도 모르게 약이라도 섞고 싶은 마음이 있을 정도로 민철을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하고, 이에 대한 타당한 이유도 밝혀야 합니다.


일단 첫 회분만 썼습니다.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심지어 이 소설을 쓴 저 역시도 모르는 바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지만, 그저 어느 정도는 읽을 만한 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하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