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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19. 2024

걷다가 지쳐

삼백 쉰세 번째 글: 먼 거리도 아닌데

오후 2시가 되어 모처럼 만에 시간이 났습니다. 남은 시간 뭘 할까 고민을 하다 마침 도서관에 채 반납하지 못한 책들이 생각났습니다. 어차피 한 번은 갔다 와야 할 길입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고 굳이 별도로 시간을 내는 것보다는 이렇게 여유 시간을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2시가 되자마자 백팩을 둘러매고 도보로 5분쯤 걸었습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모니터에 왜관읍으로 가는 버스가 9분 후에 들어온다는 안내 메시지가 떴습니다. 말이 9분이지 실제로 들어오는 시각은 대략 예정된 것보다 3분은 더 소요됩니다. 정류장 주변은 허허벌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태양광선이 사정없이 내리쬡니다. 물론 그늘진 곳은 손바닥 크기만큼도 안 됩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려니 퍼붓는 뙤약빛 속에서 온몸이 무너져 내릴 지경입니다. 10분쯤 마치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주변을 배회합니다. 잔뜩 달아오른 보도블록 위를 오르락내리락, 이번엔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다시 갑니다. 신기했던 건, 원래는 움직임이 많을수록 으레 땀이 나고 더 더워지는 게 정상인데, 오히려 한 자리에 있으니 더위는 극에 달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마에선 슬슬 땀이 맺히고 있었고, 백팩을 당겨 맨 등은 이미 흠뻑 젖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조금 전 낮 10시경에 어떤 선생님이 낮 최고기온이 36도라며 오늘도 보통 더운 게 아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말로 들었을 때는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밖에 나와보니 기온이 실감될 정도로 푹푹 찝니다.


버스가 들어와 차에 오릅니다. 모든 좌석이 창가에 붙어 있으니 어딜 앉든 태양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참을 수 있는 건 차 안에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어서 비교적 시원했다는 점입니다. 10km를 달려 종점인 왜관시외버스남부정류장에 내립니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 문 하나가 가로놓인 기분이 듭니다.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정류장에서 제가 가야 하는 칠곡군립도서관까지는 고작 1.5km, 평소 같으면 20분이면 넉넉히 갈 수 있는 거리인데, 편도로만 무려 30분이 걸렸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으니까요.


드디어 도서관 건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입니다. 도서관 규모에 비해 이용자 수가 그리 많지 않아 갈 때마다 여유 있게 이용하다 오는 곳입니다. 다른 공공도서관은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해 조금만 늦게 가도 자리가 없는데, 유독 이곳은 개관 후 서너 시간 뒤에 가도 잔여석이 절반 이상 될 정도입니다.


얼른 가서 책을 반납하고 좀 쉬어야 할 듯합니다. 쉬면서 내친김에 글도 쓸 생각입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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