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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25. 2024

매일 아침 소풍을 가듯

151일 차.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도 새로이 시작되는 이 하루에 작은 기대를 걸어 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제 인생에 스펙터클한 그 어떤 것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단지 오늘 하루도 무사히,라는 슬로건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떠올릴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차분하게 맞이한 것처럼 저물어가는 저녁도 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때로는 바윗덩어리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가 되어도 봅니다. 좋건 싫건 간에 자꾸만 굴러 내려가는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합니다. 굳이 왜 그래야 하는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 앞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놓여 있고, 이걸 움직여야만 길이 생긴다면 제게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입니다. 기껏 올려놨는데 이내 아래로 굴러가도 두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밀어 올려야 합니다. 그것이 최소한 오늘 이 아침에 눈을 뜬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늘 그랬듯 저의 아침은 글쓰기로 시작됩니다. 주변 사람들은 제게 말합니다. 글 같은 거 써서 뭐 하냐고 묻습니다. 31년 지기도 이에 질세라 고리타분한 거 그만두고 같이 골프나 치자고 합니다. 글쓰기 외에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그러고 있냐고 합니다. 이제 더는 직접적으로 방해하지는 않지만, 심지어 가족들도 글 쓴답시고 골방에 틀어 박혀 있는 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겐 글쓰기가 시시포스의 바윗덩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간혹 들곤 합니다. 머릿속은 복잡한 편이지만 가급적이면 단순하게 생각하려 합니다. 그저께도 어제도 힘껏 밀어 올렸다면 오늘도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설령 글쓰기가 전혀 늘지 않고 늘 제자리만 맴돌아도 상관없습니다. 바윗덩어리가 없어지진 않더라도 굴리고 또 굴리다 보면 언젠간 닳아 그 크기가 줄어드는 날이 오진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씁니다.


제겐 집을 나서서 학교에 도착하는 2시간 반 동안 완벽한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셈입니다. 더없이 편안한 상태에서 글을 씁니다. 고맙게도 그 어느 누구도 저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수필을 쓸 때는 인생의 조언자가 되어 갈피를 못 잡는 제게 따끔한 일침을 날리기도 하고, 어느 것 하나 제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도 소설을 쓸 때는 전지전능한 창조주도 되어 봅니다.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딜 가서 제가 이런 멋진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요?


썩 마음에 들진 않더라도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글이 풀려가듯, 제 앞에 가로놓인 이 하루도 별다른 탈 없이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곧 왜관으로 가는 기차가 들어옵니다. 누군가가 제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소풍을 가는 것처럼 들뜨지 않느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이 아침이 더없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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