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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22. 2024

세 권의 소설

삼백 일흔여섯 번째 글: 기억하고 싶은 소설은 무엇인가요? 

늦은 밤입니다. 잠을 자야 하는데 별생각 없이 책 한 권을 펼치고 맙니다.

어차피 이 밤에 다 읽지도 못할 텐데, 왜 난데없이 이 책을 펼쳤을까요?

일단 첫 번째 이유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김훈 선생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소설은 어지간해서는 죄다 읽어 본 걸로 아는데, 단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아, 물론 김훈 선생의 작품이 굳이 제 마음에 쏙 들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그를 열렬히 추종하는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서의 느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몇십 페이지 읽을 수는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이른 시간에 잠이 들어야 내일 또 출근할 테니까요. 다만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하나의 의식적인 행위로써는 사실 이만한 것도 없을 듯합니다.


대략 10여 쪽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저를 실망시킬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굉장히 묵직한 내용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같은 문학의 문외한으로서는 그분의 작품을 어떤 식으로든 평가할 깜냥은 못 됩니다. 그저 좋다는 느낌뿐입니다. 독자로서 작품이 좋다는 느낌만 있다면 된 것 아니겠습니까?


문득 문학은 일반적으로 인문학의 반열에 드는 것이란 사실이 떠오릅니다. 문학, 역사, 그리고 철학, 이른바 문사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작품들이 그런 인문학의 반열에 드는 건가,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다소 무식하게 이야기하자면 순문학으로 일컬어지는 것들만 인문학이라고 지칭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흥미나 오락거리로서의 문학이 아닌 독자에게 무궁무진한 생각의 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겠습니다.


그냥 읽고 지나칠 만한 소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곤 합니다. 적어도 저는 따위 소설은 쓰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제가 방금 전에 말한 따위 소설만큼도 저는 쓰지 못합니다. 그러니 아마도 저는, 말은 소설을 쓴다고 하지만 제가 쓴 소설이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될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이제 자야 합니다. 불현듯 그동안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국내 소설 3권이 떠오릅니다. 당연히 국내 소설가의 모든 소설을 읽은 건 아닙니다. 물론 타인이 좋다고 하는 작품에 대해 저 역시 호의적인 평가를 내릴 이유도 없습니다. 저는 문학평론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까지나 제 마음대로 최고의 소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제 곧 여름방학이 됩니다. 여름방학 때 제가 꼭 해야 할 적당한 일이 생각났습니다. 이 세 작품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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