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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25. 2023

방학 스케줄

열아홉 번째 글: 욕심 내지 말고 딱 한 가지만 하자!

오늘 드디어 방학에 접어든다. 일수로는 29일. 근 1달 가까이 우리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다. 어찌 보면 하루 종일 아이들이 앵앵거리는 소리에 시달리다 보니 1년에 2번씩 돌아오는 방학이 못내 반갑기도 할 테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일단 방학 때 우리 아이들을 볼 수 없다는 게 제일 아쉽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 아이들은 나와 남남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난 늘 입버릇처럼 아이들에게 말하곤 한다. 너희들은 학교에서는 내 새끼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방학을 앞두면 늘 걱정거리가 생긴다. 요놈들이 과연 방학 동안 얼마나 계획성 있게 생활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걱정은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 교사인 나 역시도 학창 시절에 수없는 방학을 보냈지만, 딱히 그렇게 계획성 있는 생활을 한 기억이 없다. 어물어물하다 벌써 개학이구나, 하는 통탄을 방학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하곤 했다.


방학은 교사에겐 재충전의 시간이다. 그 재충전이라는 것은 평소에 자신이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못했던 일을 몰아서 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보지 못한 곳을 방문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이 자리를 빌어 변론을 하나 하자면, 방학이라고 해서 모든 선생님들이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난 이번 방학에 특히 출근을 자주 하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점검 차원에서 이번 방학에 며칠 동안 출근하는지 세어 보았다. 총 15일 간 출근하게 된다. 방학 시작 다음 날부터 10일 동안 학생 지도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끝나자마자 하루 관외 출장, 그리고 남은 4일 중 3일은 2박 3일짜리 학생 캠프에 인솔 및 지도 교사로 참여하고, 마지막 하루는 개학 3일 전에 대대적인 교실 청소 및 정리정돈을 하기 위해 출근한다. 뭐, 그래도 일수로 봤을 때 14일은 쉴 수 있으니 거기에 만족한다. 원래 내 성격이 없는 일 만들어서라도 출근하는 스타일이니 집에서 쉬는 것에 그다지 미련은 없다.




어제 우리 아이들에게 미리 방학계획서를 나눠 주면서 방학 동안의 일을 계획해 보자고 했다. 이때 나는 반드시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다. 그 강조 내용을 무조건 방학계획서 맨 위에 굵은 글씨로 쓰게 한다.

살아서 돌아오기!

꼭 트라우마까지는 아니더라도 6학년 여름방학 때 우리 반 아이가 죽은 기억이 있어서, 내가 교사가 된 이후 반드시 강조하는 사항이다. 그래서, 무탈하게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면 내가 맡은 반 아이들은 방학숙제를 해오지 않아도 크게 탓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살아서 돌아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여기에 내가 제출하는 딱 하나의 숙제가 있다. 일명 1인 1 과제 수행하기이다.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는 자전거 마스터하기, 리코더나 단소를 못 부는 아이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곡 중 3곡 이상 리코더나 단소로 연습하기, 책을 평소에 싫어했던 아이들은 내가 지정해 주는 20권의 책 읽기, 요리를 못하는 친구들은 엄마와 함께 최소 주 3회의 요리를 하고 인증샷 전송하기,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주 2회 이상 영상 업로드하기 등, 아이들이 할 수 있는 1인 1 과제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딱 이 두 가지만 강조한다. 살아서 돌아왔고, 1인 1 과제만 해온다면, 다른 학년 공통 과제나 개인 선택 과제 등은 큰 마음먹고 눈감아준다. 담임이라는 사람이 그러면 되느냐고 하는 이도 있긴 했지만, 47번째 방학을 맞이하는 동안 실제로 학교에서 제출하는 방학 숙제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그래서인지 어제 아이들에게 숙제 1(무조건 살아서 돌아오기)과 숙제 2(1인 1 과제 수행하기)를 강조했더니 입이 귀에 걸린 표정들이었다.


아이들에게 방학 동안 적어도 이런 이런 것들은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면 담임인 나 역시도 해야 할 나만의 1 과제를 선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선택하는 과제는 아무래도 아이들과는 괴리감이 있어서 굳이 내 과제가 무엇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런 나만의 1 과제를 수행한 방학은 후회가 아닌 보람으로 늘 남곤 했다.

그렇다면 나만의 1 과제는 무엇일까? 당연히 글쓰기이다.

이번엔 특별히 내가 생각한 주제에 대해 중편소설을 하나 쓸 계획을 갖고 있다. 쉬운 말로 구상은 다 되어 있지만,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아니다. 제대로 된 문학 수업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 때문에 턱없이 부족한 문학적 소양 때문인지 나는 글을 쓰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경험을 많이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배가 강이나 바다로 흘러들어가면 다행이지만, 기어이 산으로 가겠다면 산속에서라도 어떻게든 배가 다니는 길을 만들어 나가려 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계획했던 것과는 영 엉뚱한 방향으로 글이 전개되곤 하지만, 뭐,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독, 다작, 다상량에서의 다작의 힘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방학은 우리 아이들에게나 내게나 각자가 선정한 1인 1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들떠서 7월 들어 전혀 집중이 되지 않는 우리 아이들, 방학 동안 어떻게 생활할지 눈에 그려지지만 그조차도 그 아이들이 겪어보고 또 헤쳐 나가야 할 하나의 난관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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