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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01. 2024

1회는 이렇게 써 보세요.

#3.

앞선 글에서 저는 1회를 완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는 그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자기가 직접 글을 써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 문제는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는 데 있는 게 아니겠냐고 말입니다.


저는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쓰는 소설을 당장 책으로 출간할 게 아니니까요? 단순히 생각하자면 소설 쓰기를 연습한다 생각하고 글을 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언니가 들어왔다.


 이번 소설의 최초의 문장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매일 밤 자려고 같이 누운 언니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몰래 밖으로 나갔다 옵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이야기의 주인공인 동생이 알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숨어 있다는 걸 암시하는 셈입니다. 물론 이 최초의 문장을 쓰면서 한동안 고민했던 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이야기 속의 언니의 이름이 수희라면 이런 문장으로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수희가 들어왔다.


수희라는 언니의 이름이 사용되었다는 건 적어도 동생의 입장에서 사건을 서술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즉 언니나 동생의 말과 행동과 그리고 심리 등에 대해서 죄다 알고 서술하겠다는 겁니다. 이름하여 전지적 작가 시점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사건을 보다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적는다면 사실 편하기는 할 겁니다. 마치 미로 속에 쥐를 가둬놓고 위에서 내려다보듯 등장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만약 '한 시간이 지나서야 수희가 들어왔다.'라는 식으로 서술이 되면 가령 수희의 동생인 수아의 입장에서도 '수아는 자신이 잠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썼다.'와 같은 문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의 이야기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서 전해 듣는 듯한 느낌을 줄지도 모릅니다. 작품 속의 주인공인 '나'라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우리가 그 이야기를 듣는다면 신뢰감이나 친근감을 느끼게 마련인 것입니다. 다만 모든 게 좋을 수는 없습니다. 주인공인 '나'의 내면세계를 그리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한쪽인 수희(언니)의 심리는 포기해야 합니다. 아울러 주인공인 '나'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주인공의 뒤만 졸졸 따라다녀야 합니다.


골치 아프게 생각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이게 시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시점에 대한 일반론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해도 막상 소설을 쓰려고 최초의 문장을 쓰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이 '시점'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전 늘 소설의 창작 이론보다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써보는 걸 더 선호합니다. 하다 보면 되는 것이지,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이 못 됩니다. 그건 마치 갓 열리기 시작하는 사과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전 그래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선택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되면 제 이번 소설의 최초의 문장은 이렇게 확정이 됩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언니가 들어왔다.


최초의 문장이 적힌 후에는 그다음의 문장을 이으면 되고, 다시 거기에 또 다른 문장을 이어가는 식으로 적으면 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언니가 밤중에 밖을 나갔다 온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어야 합니다. 적어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는 언니가 있으니, 반대편에 선 동생인 수아는 어떻게든 언니 앞에선 모른 척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식으로 한 문단을 적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언니가 들어왔다. 발소리도, 문 열고 닫는 소리도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느껴졌다. 방 안에 들어오자 한숨을 내지른다.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자다가 일어나 밖을 나갈 때는 그럴 수 없지만, 한 시간 후 다시 돌아오면 언니는 반드시 문을 잠근다. 그것도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 언니는 자리에 눕는다.


여기에서 저는 잠시 고민했습니다. 이 집에 여자 둘만 살게 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을 만들어 줄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물론 누가 되었든 새롭게 추가될 가족은 아마도 이 고요한 집에 풍파를 일으킬 인물이 될 소지가 큽니다. 갈등 없는 이야기가 무슨 흥미가 있을까요? 오빠, 남동생, 엄마 등에 대해서 고심했습니다. 아무래도 엄마를 설정하는 것은 그다지 매력이 없습니다. 언니와 동생인 '나'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것을 감안한다면, 남자가 필요하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오빠나 남동생보다도 더 적당한 인물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아빠라는 존재입니다. 어찌 보면 엄마라는 연결 고리만 없다면 거의 남에 가까운 존재일지도 모르는 아빠가 갈등을 조장하기엔 충분했다고나 할까요? 다시 문장이 조금은 더 풍성해집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언니가 들어왔다. 발소리도, 문 열고 닫는 소리도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느껴졌다. 방 안에 들어오자 한숨을 내지른다.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자다가 일어나 밖을 나갈 때는 그럴 수 없지만, 한 시간 후 다시 돌아오면 언니는 반드시 문을 잠근다. 그것도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 언니는 자리에 눕는다. 거실 건너 큰방에 엄연히 아빠가 있는데도 언니는 단 한 번도 문 잠그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단 둘이 있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빠가 있는데도 습관처럼 그러는 모습을 보면 사실 이해가 안 간다.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자주 되풀이되는 일이라 '나'는 늘 궁금합니다. 언니가 왜 그러는지를 말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초반부에서 이미 언니는 그 일을 비밀로 만들어 버립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어쩐지 '나'는 언니에게 그 일에 대해 물을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일의 전말을 감추려는 언니의 시도가 이어지는 게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언니가 들어왔다. 발소리도, 문 열고 닫는 소리도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느껴졌다. 방 안에 들어오자 한숨을 내지른다.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자다가 일어나 밖을 나갈 때는 그럴 수 없지만, 한 시간 후 다시 돌아오면 언니는 반드시 문을 잠근다. 그것도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 언니는 자리에 눕는다. 거실 건너 큰방에 엄연히 아빠가 있는데도 언니는 단 한 번도 문 잠그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단 둘이 있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빠가 있는데도 습관처럼 그러는 모습을 보면 사실 이해가 안 간다.

문을 잠근 뒤에는 반드시 언니는 선 채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럴 때마다 작은 한숨 소리가 지나갔다. 뭔가 힘든 일이 있어서 쉬는 숨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걱정하던 뭔가가 이제 지나가서 마음이 놓인다는 듯한 한숨이었다.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 끝자락을 든 언니는 어떻게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10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언니는 다시 한번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이번엔 좀 더 가까운 위치였다. 아마 방바닥에 주저앉아 있거나 무릎을 꿇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어쩐 일인지 자는 척해야 할 것 같아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언니의 콧김이 내 얼굴에 와닿았다. 고른 숨소리를 들려줘야 했다. 의식적으로 눈꺼풀을 깜빡이지 않으려 애를 써서도 안 된다. 이불을 들어 다리가 들어갈 정도의 틈을 만든 언니는 아주 조금씩 몸을 밀고 안으로 들어온다. 내 잠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확신한 언니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잠잠해진다.
다음 날이면 또 일을 나가야 하는 언니는 늘 피곤에 절어 있다. 특별한 몇몇 날을 제외하면 언니는 베개에 머리를 얹는 순간 잠에 빠지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방에 다시 들어온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언니는 거짓말처럼 잠에 들었다.
숨소리가 점점 편안해지고 있다. 얼핏 보니 가슴이 위아래로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여기까지 진행이 되면 이미 언니는 '나'를 완벽히 속였다고 믿게 될 것입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모종의 비밀을 간직한 채로 언니는 잠에 들었지만, 이렇게 1회를 끝내기엔 뭔가가 건조합니다. 그 비밀의 단서를 제공할 만한 어떤 패를 슬쩍 보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종의 복선이겠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언니가 들어왔다. 발소리도, 문 열고 닫는 소리도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느껴졌다. 방 안에 들어오자 한숨을 내지른다.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자다가 일어나 밖을 나갈 때는 그럴 수 없지만, 한 시간 후 다시 돌아오면 언니는 반드시 문을 잠근다. 그것도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 언니는 자리에 눕는다. 거실 건너 큰방에 엄연히 아빠가 있는데도 언니는 단 한 번도 문 잠그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단 둘이 있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빠가 있는데도 습관처럼 그러는 모습을 보면 사실 이해가 안 간다.

문을 잠근 뒤에는 반드시 언니는 선 채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럴 때마다 작은 한숨 소리가 지나갔다. 뭔가 힘든 일이 있어서 쉬는 숨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걱정하던 뭔가가 이제 지나가서 마음이 놓인다는 듯한 한숨이었다.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 끝자락을 든 언니는 어떻게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10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언니는 다시 한번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이번엔 좀 더 가까운 위치였다. 아마 방바닥에 주저앉아 있거나 무릎을 꿇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어쩐 일인지 자는 척해야 할 것 같아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언니의 콧김이 내 얼굴에 와닿았다. 고른 숨소리를 들려줘야 했다. 의식적으로 눈꺼풀을 깜빡이지 않으려 애를 써서도 안 된다. 이불을 들어 다리가 들어갈 정도의 틈을 만든 언니는 아주 조금씩 몸을 밀고 안으로 들어온다. 내 잠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확신한 언니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잠잠해진다.
다음 날이면 또 일을 나가야 하는 언니는 늘 피곤에 절어 있다. 특별한 몇몇 날을 제외하면 언니는 베개에 머리를 얹는 순간 잠에 빠지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방에 다시 들어온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언니는 거짓말처럼 잠에 들었다.
숨소리가 점점 편안해지고 있다. 얼핏 보니 가슴이 위아래로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그런데 언니의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머리카락에서 냄새가 났고,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 잠옷에서도 풍긴다. 물론 숨을 쉴 때에도 어김없이 담배 냄새가 났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언니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물론 직장에서 나 몰래 피울 가능성도 없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 언니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19살이라는 나이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여럿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심지어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도 서너 명은 담배를 피운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언니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몸에도 좋지 않은 고작 담배 따위로 자기 건강을 해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 냄새는 어떻게 해서 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직접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온몸에서, 입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걸까? 도대체 한 시간 동안 어딜 갔다 오기에 저렇게 지독한 냄새를 묻혀 왔을까? 게다가 그렇게 냄새가 나면 어떻게든 냄새를 제거하고 방으로 들어오면 될 텐데 뭘 하다 왔는지는 몰라도 매번 들어올 때마다 뭔가에 쫓기듯 들어온다는 것도 수상하다.


대략 이런 식으로만 적어도 애초에 예정했던 1회 분량의 절반 이상을 썼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론이고 뭐고 다 필요 없습니다. 시점 설정이든 배경 묘사든, 혹은 갈등 설정이든 직접 인물을 세워놓고 요리 만지고 조리 만지고 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론상으로만 네 가지 시점의 각 시점의 특징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단 한 문장이라도 쓸 수 있게 해주는 건 아니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써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문장 하나에 또 다른 문장 하나를 더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멀리 내다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 어찌 먼 곳까지 시야가 가 닿을까요? 일단은 앞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내딛듯 문장에 문장을 더해가기만 하면 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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