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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04. 2024

길면 3개월입니다.

#3.

잠을 설친 탓에 아침에 공원으로 나가지 못했다. 커튼 틈으로 햇빛이 안방에 쏟아져 내릴 때쯤 겨우 잠이 든 현수였다. 그랬다. 통증으로 인해 밤새 한숨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잔뜩 날이 선 칼날이 아랫배를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 때문이었다. 배를 움켜쥔 채 뒹굴기를 얼마나 지속했을까? 온몸에 비 오듯 연신 쏟아져 내리는 땀을 닦아내던 혜주는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마 한 순간이라도 자신이 아팠다면 하는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가정이라고 해도 그런 상황은 현수가 원치 않았다. 이 무지막지한 아픔을 연약한 혜주가 감당하게 되는 건 상상으로도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만약 누군가가 아파야 한다면 혜주보다는 차라리 현수인 자신이 아픈 게 이치에 맞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이 정도의 아픔뿐이라면 죽는 그 순간까지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태어나 처음 겪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역시 사람은 맞닥뜨리게 되면 뭐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극심한 통증에 시달릴 거라는 의사의 말이 있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렇게 곱게 죽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고작 그 자그마한 진통제 몇 알이 사람을 이렇게 편안하게 해 줄 줄은 몰랐다.


혜주와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난 건 그래봤자 불과 보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눈을 뜰 때마다 혜주가 옆에 누워 있다는 것이, 통증으로 배를 부여잡고 뒹굴 때마다 옆에 혜주가 있다는 것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실 혜주는 이미 십오 년 전부터 현수와 각방을 써왔다. 둘 중 한 사람의 요청이 있었다거나 부부 사이가 나빠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2년 간격으로 태어난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일이었다.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건 아니라고 해도 육아를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전적으로 누군가가 전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익히 알고 있는 현수와 혜주였다. 각방을 쓰는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토론의 과정을 거친 사람처럼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밤만 되면 각자 베개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현수는 혼자 쓰기엔 지나치게 넓은 방에서 외로이 지내야 했고, 안 그래도 좁아터진 또 다른 방에선 혜주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두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잠시 놀아주거나 그림책 따위를 읽어주다가도 결정적으로 아이를 재워야 할 때에는 혜주가 아이들의 옆을 지켜야 했다. 젊어서부터 각방을 쓰는 버릇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어도 현실적으로 각방을 쓸 수밖에 없던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지는 않았다. 사정이 그러니 기꺼이 따로 잠을 이루는 데에 암묵적인 동의를 한 혜주에게도 현수는 악감정은 없었다.


그러던 혜주가 병원에서 현수가 돌아온 날 각방을 쓰기로 했던 그날처럼 이렇다 저렇다 할 말도 없이 베개를 들고 현수가 있는 방으로 건너왔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봐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만약 혜주가 그렇게 아프게 되었다고 해도 현수 역시 혜주의 간병인 역할을 자처했을 터였다.

밤새 땀을 흘리며 잠에 드는 일이 많은 현수를 옆에서 지켜줘야 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땀이 흐르는 내내 마른 수건으로 닦아 줄 누군가가, 온몸이 흠뻑 젖었을 때 마른 옷으로 갈아입혀 줘야 할 손이 필요했다. 별로 먹은 것도 없지만 속의 것을 다 게워낼 때 하다못해 양철통을 들고 있어줘야 할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게다가 지난밤처럼 밤새 통증으로 잠을 못 이루다 기절하기라도 하면 사태를 지켜본 뒤에 구급차를 불러야 할 수도 있었다.


억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잠이 들 무렵 보름 전 혜주가 문득 건넨 한마디가 잊히지 않았다.

“우리 정말 오랜만에 같이 누워 보네. 기분이 어때?”

참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혜주에게 현수는 도대체 무슨 의미로 그런 질문을 하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얼핏 들으면 십오 년 만에 한 이불을 덮고 자게 되었는데 감개가 무량하지 않느냐는 말로 들렸다. 혜주의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런 순간에도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관계를 가졌던 게 언제였나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그 짓을 생각한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무려 3년을 넘게 금욕을 실천했으니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었다. 현수는 한편으로 웃음이 났다. 이런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직은 견딜 만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한차례 광풍이 휩쓸고 간 듯 집안이 고요했다. 혜주는 적성에도 맞지 않는 요리를 한답시고 벌써 꽤 오래 주방에 붙어 있었다. 정작 현수는 괜찮다고 해도 환자에게는 저염식이 기본이라며 고집을 피우는 혜주였다.

“그런다고 해서 나아질 병도 아니잖아.”

마음은 몇 번이고 그렇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시키지도 않은 일을 군소리 없이 해내고 있는 혜주에게 응원은 못할망정 괜스레 초를 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걱정해서 뭔가를 상대방이 해준다면 잠자코 받아들이면 된다는 걸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도 현수가 뜬눈으로 지새우다 겨우 몇 시간 잠들어 있었을 그 시각에 온갖 인터넷을 뒤져가며 알아낸 사실일 터였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람이 이렇게도 변하는구나 싶었다. 요리에는 젬병인 혜주가 직접 요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아무리 봐도 그 과정에 제법 흥을 느끼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순간 현수는 몸이 아파서 좋은 일도 있다는 걸 알았다. 진심으로 혜주가 삶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 사람이라도 즐거우면 된 거야.’

현수의 눈에 보이는 혜주의 즐거움이 진정한 그것이 아니란 걸 모를 리는 없다. 다만 그렇게라도 삶에 의욕을 보이는 혜주에게 모종의 고마움이 느껴졌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간 두 아이는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곧 있으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제외하고 아빠가 많이 아프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들이었지만, 밤도 아닌 대낮에 같은 공간에 둔다는 건 혜주로서도 그다지 탐탁한 일은 아닌 듯했다. 죽을병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데 아빠가 저렇게 많이 아파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시 그것 때문에 일부러 말하지 않은 아빠의 시한부 삶을 눈치채는 건 아닌지 염려되기 때문일 테다. 아마 꽤 늦은 시간까지는 학원에서 학원으로 전전하다 들어올 것이다. 큰 아이가 열일곱, 작은 아이가 열다섯, 그 정도라면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지 않았을까, 하면 혜주에게 운을 떼봐도 혜주는 마냥 아직은 그때가 아니라는 말만 했다. 하긴 마음이 여린 두 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현수로서도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일단은 혜주의 판단을 믿고 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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