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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07. 2024

실제 소설 쓰기 시연 (1)

언니의 외출 #1.

한 시간이 지나서야 언니가 들어왔다. 발소리도, 문 열고 닫는 소리도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느껴졌다.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내지른다.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자다가 일어나 밖을 나갈 때는 그럴 수 없지만, 한 시간 후 다시 돌아오면 언니는 반드시 문을 잠근다. 그것도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 자리에 눕곤 한다. 거실 건너 큰방에 엄연히 아빠가 있는데도 언니는 단 한 번도 문 잠그는 것을 잊지 않는다. 둘만 있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빠가 있는데도 습관처럼 그러는 모습을 보면 사실 이해가 안 간다.
 
문을 잠근 뒤에는 반드시 언니는 선 채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럴 때마다 작은 한숨 소리가 지나간다. 뭔가 힘든 일이 있어서 쉬는 숨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걱정하던 뭔가가 이제 지나가서 마음이 놓인다는 듯한 그런 한숨으로 느껴졌다.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 끝자락을 든 언니는 어떻게든 소리를 내지 않고 이불속으로 몸을 집어넣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10초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언니는 다시 한번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이번엔 좀 더 가까운 위치였다. 아마 방바닥에 주저앉아 있거나 무릎을 꿇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어쩐 일인지 자는 척해야 할 것 같아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언니의 콧김이 내 얼굴에 와닿았다. 고른 숨소리를 들려줘야 했다. 의식적으로 눈꺼풀을 깜빡이지 않으려 애를 써서도 안 된다. 다시 천천히 이불을 들어 올린 언니는 다리가 들어갈 정도의 틈을 만들어 아주 조금씩 몸을 밀고 안으로 들어온다. 내 잠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확신한 언니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잠잠해진다.
 다음 날이면 또 일을 나가야 하는 언니였다. 그래서인지 늘 피곤에 절어 있다. 특별한 몇몇 날을 제외하면 언니는 베개에 머리를 얹는 순간 잠에 빠지는 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방에 다시 들어온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언니는 거짓말처럼 잠에 들었다. 숨소리가 점점 편안해지고 있다. 얼핏 보니 가슴이 위아래로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그런데 언니의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머리카락에서 냄새가 났고,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 잠옷에서도 풍긴다. 물론 숨을 쉴 때에도 어김없이 담배 냄새가 났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언니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물론 직장에서 나 몰래 피울 가능성도 없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 언니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열아홉 살이라는 나이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여럿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심지어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도 서너 명은 담배를 피운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언니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고작 몸에도 좋지 않은 담배 따위로 자기 건강을 해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 냄새는 어떻게 해서 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직접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온몸에서, 더군다나 입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걸까? 도대체 한 시간 동안 어딜 갔다 오기에 저렇게 지독한 냄새를 묻혀 왔을까? 게다가 그렇게 냄새가 나면 어떻게든 냄새를 제거하고 방으로 들어오면 될 텐데 뭘 하다 왔는지는 몰라도 매번 들어올 때마다 뭔가에 쫓기듯 들어온다는 것도 수상했다.




언니는 나에게 그 어떤 비밀도 없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지금까지 모든 일을 나하고 의논했다. 아니 의논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일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길 때마다 언니는 하나하나 내게 설명해 줬다. 언니의 생각은 이랬다. 아무리 내가 나이가 어리더라도 알 건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언니와 나는 가족이니 모든 걸 함께 해야 하고, 우리처럼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없는 경우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헤쳐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언니는 다섯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단 한 번도 나를 어린애 취급을 한 적이 없다. 언니는 내 언니이기 이전에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실제로 학교에서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보다도 더 속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그게 바로 자다가 일어나 밖을 나가는 일이다. 일어나서 어딜 갔다고 오는지, 뭘 하기에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내다 오는지 등에 대해 단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다. 나 역시 물은 적이 없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물을 수 없었다고 해야 맞는 말일 테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까?


언니는 1주일에 두세 번씩은 꼭 잠을 자다 한 시간씩 나갔다 온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잠을 자다가 나가는 게 아니다. 자는 척하고 있다가 나간다는 게 문제다. 그건 어쩌면 내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일 것이다. 결국은 어떤 이유에서든 나를 속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소리다. 처음엔 나도 언니가 한밤중에 어딜 갔다 온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몇 번인가 자다가 무심코 잠에서 깼을 때 그때마다 언니가 옆자리에 없는 것이 이상하긴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언니가 일정한 시간만 되면 밖으로 나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1주일에 한 번꼴로 자리를 비우던 것이, 초경을 시작한 2년 전부터는 두 번으로 늘었다. 그러다 6개월 전부터는 많으면 세 번씩 방문을 열고 나선다. 나갈 때마다 언니는 늘 내가 누운 쪽을 확인했다. 잠이 제대로 들었다고 판단이 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언니는 방문을 닫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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