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번호
삼백 여든한 번째 글: 나머지 4개는요?
며칠 전에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꽤 오랜만에 뵙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산신령의 출현처럼 안개에 얼굴이 절반쯤은 가려져 있었지만, 한 분뿐인 제 어머니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지요.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얼추 8년 만에 보니 반가웠습니다.
뭔가 이런저런 말씀들을 하셨는데 하나도 기억은 나지 않았습니다.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지금 기억은 못 해도 마음으로 듣고 이해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지금부터입니다. 희한하게도 꿈의 어느 시점부터는 기억이 또렷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이것 때문에 오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계시다가 밑도 끝도 없이 두 개의 번호를 저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묘한 건 그 두 개의 번호가 1에서 45 사이에 있는 번호였다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순간 저는 로또 당첨 번호를 떠올렸습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다급한 마음에 나머지 번호를 여쭤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 6개의 번호가 필요한데 나머지 4개는?"
어머니는 늘 그랬듯 만면에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아무리 제 어머니라지만 이럴 때 순진무구한 모습은 조바심만 더 태울뿐입니다.
나머지 네 개의 번호도 가르쳐 달라는 제 질문을 못 들으신 건지 어머니는 엉뚱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더운데 오며 가며 각별히 건강에 조심하라고 합니다. 원래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것이니, 나가 있을 때에는 돈 아끼지 말고 제대로 된 걸로 밥을 사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살아 계셨다면 충분히 하실 법한 얘기들이었습니다.
급작스러운 사고로 유언도 못 남기시고 돌아가셨던 어머님이 마치 미처 말씀하시지 못했던 그 마지막 말을 하시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하긴 어머니란 존재가 자식에 대한 걱정 외엔 하실 말씀이 무엇이 있겠나 싶었습니다.
산신령이 사라지듯 홀연히 어머니는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나머지 네 개의 번호는 말씀해 주시지도 않고 말입니다. 일단 전 꿈에서 깨자마자 어머님이 보여주신 두 개의 번호를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 놨습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랑 번호 두 개만 적어 놔서 어디에 쓸까, 하고 말입니다.
어젯밤에 이 얘기를 아내에게 했습니다. 하필이면 왜 번호를 두 개만 주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하더니 아내의 해석이 꽤 일리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잘 기억하라고 세 번에 나눠서 가르쳐 주시려나 본데?"
그러면서 아마 두 번 더 나타나실 거리고 하더군요. 일단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정작 중요한 건 아직 두 번째 두 개의 번호는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언제쯤 제 꿈에 다시 나타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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