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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02. 2024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18.

아침을 못 먹고 나와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다소 이른 시간이긴 한데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냥 조금 더 참았다가 1시간 후 나갈까 하다가 어차피 나갈 거면 조금 이르더라도 갔다 오면 되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한창 사람들이 붐빌 때보다는 더 나을 것 같기도 했고요. 노트북 전원을 끄고 휴대폰을 챙겨든 채 일단 도서관을 나셨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서 제가 주로 밥을 먹으러 다니는 식당은 대략 도보로 7~8분 거리에 있습니다. 햇빛 피할 곳이라고는 없는 길 한가운데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 잠깐이 시간이 꽤 길게도 느껴졌지만, 조금만 참으면 시원한 곳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게 됩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표현을 아마도 이럴 때 쓰는 모양입니다. 출입문 앞에 닷새 동안 휴가를 다녀온다는 쪽지가 붙어 있더군요. 아쉬움을 머금고 인근의 다른 식당으로 옮겼습니다.


1시간 이른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와 다시 도서관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위에서는 인정사정없이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고, 배가 불러서 그런지 눈꺼풀은 점점 그 무게감이 더해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제가 걷고 있던 그 길의 한편에 자리라도 깔고 누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작은 편의점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어르신들이 잔뜩 앉아 있더군요. 그때 문득 글감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좋은 글이 되었든 나쁜 글이 되었든 글을 쓰는 제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요. 저는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멀리에서 어르신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물론 그분들의 동의 없이 사진을 남겨서 더없이 죄송하긴 합니다만, 어르신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육안으로는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가 힘들고, 그나마 먼 거리에서 찍었다는 변명을 해두려 합니다. 


먼저 이 사진 속에 등장한 분들에는 전혀 개인적인 감정이 없다는 것부터 밝히려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분들을 비난한다거나 안줏거리 삼아 흉을 보겠다는 의도 또한 없습니다. 다만 이 폭염의 한가운데에 저렇게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머지않은 미래의 그 어느 날 저 역시 맞닥뜨리게 될 제 노후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가 그려졌습니다.


솔직히 제 개인적으로는 사진 속에서처럼 저렇게 길에 나와 하릴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분들이 그래서 나빴다는 게 아니라, 만약 저였다면 저는 저런 식으로 앉아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저 모습은 제가 너무도 자주 보는 모습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할 때면 어김없이 목격하는 광경입니다. 대구역 및 왜관역 광장과 대합실에서, 혹은 두 군데의 왜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심심찮게 보곤 합니다. 뭐랄까요, 볼 때마다 저렇게 앉아 있는 분들이 너무 애처롭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많이 적적하니 저렇게 몰려나와 앉아서 햇빛도 쬐고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소일거리가 없어 마냥 시간만 흘러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저와는 족히 25년 정도 차이가 나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로 여든을 앞두고 있다는 뜻일 텐데, 저렇게 보내기엔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이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좋게 말하면 모든 것을 달관한 듯한 태도일 테고, 한편으로는 매사가 귀찮아 되는 대로 하루를 그냥저냥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가면서 보고 들으니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대체로 젊은 행인들은 아래위로 그들을 훑어보고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가던 길을 갑니다.


어제 제가 쓴 글에서도 얘기했듯 노인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누구도 자신들에게 말을 거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현대인들이라는 걸 왜 그들은 모르는 걸까요? 유모차에 탄 아기가 귀엽다고 쓰다듬으려 하거나 만지려 들면 유모차를 밀고 가던 젊은 엄마들이 질색한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요? 게다가 엄연히 영업을 하고 있는 남의 가게 앞에 저렇게 도열해 앉아 있으면 민폐가 된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요?


흔히 '너도 늙어봐라.' 혹은 '너는 나이 안 들 줄 아느냐?'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런 말을 듣는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말로 응수합니다.


나는 나이 들어도 절대 저렇게 안 할 겁니다.


젊은 사람들, 혹은 이 경우엔 저까지 포함한 사람들은 지금은 충분히 큰소리칠 수 있습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나이가 든다면 정말 저렇게 하지 않을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만, 저는 염치를 아는 나이 든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 제가 어디에 있든 기본적인 체면치레도 할 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끄러움도 아는 그런 노인이 되고 싶습니다. 나이는 그 어떠한 벼슬도 계급도 아닙니다. 그러나 시쳇말로 나잇값만 잘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벼슬이나 계급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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