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Aug 03. 2024

반가운 사람

2024년 8월 3일 토요일, 낮 최고 기온 35도, 습식 사우나 식 폭염 경보 발령


낮에 잠시 공공도서관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고종석 씨의 책을 읽어보다 아직은 내가 소화할 만한 깜냥이 아닌 것 같아 반납하고 싶어서였다. 일단 얼마 동안은 다른 책들을 먼저 보고 나서 조금 여유가 생기거나 그게 언제인지는 몰라도 그 책을 소화할 수 있을 만할 때 다시 빌리기로 작정했다. 물론 내 위시리스트에 추가해 놓았다.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언제든 구매할 의향도 있다.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노트북을 가방 속에 챙겨가기는 했지만, 고작 5시에 문을 닫는 데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가봤자 노트북 자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고종석 씨의 선집을 반납하고,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현대의 유명한 몇 소설가들의 책을 빌려 왔다. 5시가 되기 직전 문을 닫는다는 방송을 듣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쩐지 낯이 익은 한 사람이 내 맞은편에 서 있었다. 누구더라, 하며 잠시 생각했다. 아직은 기억이 그나마 쓸 만한 모양이었다. 누군지 금세 알아봤다. 그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은 가깝게 지내던 후배였다.


94학번이었으니 그 아이도 이젠 어느새 쉰의 나이었다. 말이 그렇지 아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되는 후배였다. 게다가 상대방은 여자였으니, 말을 놓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갓 학교에 들어와 버벅될 때 이것저것 가르치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지나고 말았다.

'세월, 참…….'

그 아이를 보고 있으니 저절로 그 말이 떠올랐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물론 나는 말을 놓지 않았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어찌 말을 놓을까? 게다가 그 아이도 어엿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닌가?


마음 같아선 어딜 가서 차라도 한 잔 할까,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그 아이나 나나 서로 건너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무엇이든 공감대가 있어야 대화가 통하는 법, 한창 현직에 나가서 적응하고 있던 때에 만났다면 모를까, 적어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도서관 출입문 앞까지 가서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오늘은 적어도 하나의 수확은 있었다. 그 아이와 그리 긴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로 인해 난 단번에 3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얘는 도대체 뭘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