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순례
삼백 여든다섯 번째 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퍽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일명 지하철 순례입니다. 별다른 의미나 목적 같은 건 없습니다. 집 앞에서 지하철을 타고 1호선 종점까지 가면 되니까요. 가는 동안 편하게 앉아서 글을 씁니다. 일단 시원하고 그리 시끄럽지도 않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어서 글을 쓸 소재가 딱히 없을 때에는 이 방법도 꽤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주로 앞쪽의 좌석에 앉은 여섯 명의 사람들을 관찰하면 됩니다.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도 관찰을 많이 해야 하니까요.
오늘은 종점에서 딱 세 개의 역을 남겨두고 어쩔 수 없이 내렸습니다. 중요한 전화가 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너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에는 전화가 와도 받지 않습니다. 주위 사람은 개의치 않고 떠들며 통화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름 제가 정한 철칙 중의 하나입니다. 정말 급한 전화는 어떻게 하냐고요? 네, 맞습니다. 만약 그런 전화가 오면 저는 그곳이 어디든 일단 내려서 통화를 한 뒤에 다시 지하철에 오릅니다.
처음 와 보는 곳입니다. 몇 번인가 차를 탄 채로 지나가 보기만 했지 이렇게 제 발로 이곳을 디뎌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내리자마자 무슨 열돔 안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금세 팔뚝은 땀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합니다. 집을 나서기 직전 샤워를 했으니 망정이지 그냥 나왔다면 땀범벅이 될 뻔했습니다. 물론 한 5분만 주변을 돌아다니면 이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막 걸려온 전화는 제게 꽤 중요한 전화였습니다. 지금 한창 저를 괴롭히는 문제와 관련한 것입니다. 이런 전화는 적어도 지하철 안에서 받기가 어럽습니다. 바깥 날씨가 어떻든 일단 지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15분쯤 통화가 이어졌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연신 땀이 흘러내려 눈 안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일부는 안경알 위로 미끄러져 내립니다. 눈을 뜰 수 없어 안경을 벗고 팔뚝으로 대충 땀을 훔쳐 냅니다.
통화를 끝내고 작은 신호등 앞에서 파란색 신호를 기다립니다. 횡단보도 전체의 폭이 6미터가 채 안 되어 보일 정도로 짧습니다. 차량이 별로 없어 여차하면 건너도 무방해 보이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쨌건 간에 이 작은 보도를 건너야 다시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불이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때 문득 제 눈에 학교가 들어옵니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솔직히 말이 학교지 예전처럼 제법 크기가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협소하기 짝이 없는 데다 그 비좁은 운동장에 우레탄과 인조잔디까지 깔아놓아 학교가 더 작아 보입니다.
벌써 두 번인가 신호가 돌았습니다. 학교 뒤편으로 작은 골목길이 눈에 띄는 바람에 한 번 가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가 크지 않으니 담을 따라 몇 걸음만 걸어도 금세 골목에 발을 들입니다. 작고 아담한 골목이었습니다. 세 명 정도가 나란히 서서 통과할 수 있을 만한 그런 곳입니다. 속된 말로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지나는 곳마다 눈에 띄는 일반 주택들은 죄다 문이 잠겨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이 골목엔 그 흔한 개 한 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긴 이런 분위기에 골목 한가운데에서 개와 제가 대치하게 된다면 그건 어쩌면 비상사태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텅텅 빈 골목이라 집들만 몇 채 본 게 다입니다. 몇 안 되는 가게들도 때마침 휴가를 간 건지 죄다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인내심만 따라준다면 이런 곳에 얼마 동안만 있다 보면 꽤 괜찮은 스토리 하나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이 쏟아지는 햇빛부터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 날이 조금 선선해지면 다시 한번 이곳에 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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