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Aug 06. 2024

호객의 예술

[다큐멘터리] 제프 쿤스. 그 은밀한 초상

Jeff Koons. A Private Portrait


[no 스포일러는 없다]


차분하고 귀족적인 목소리와 균형적 외모, 그리고 그의 매끈한 혓바닥에 매혹당한다. 점잖으며 슈트 빨 죽이는 대중적 예술가로 내가 본 액면 그대로를 전부라 믿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가족이 말하는 그의 예술, 시련조차도 미화되는 듯한 순간에 움찔하면서도 한 인간으로 그 비추어보고자 노력했다.


제프 쿤스가 제공하는 팽창된 가상의 행복은 그야말로 사람들을 한 순간 쾌락에 적신다. 그를 오래 바라보게 한다. 그가 세상을 사는 방식은 자본주의적 예술가다.


Inflatable 부풀릴 수 있는, 이란 단어는 그의 한 작품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의 정체성이다. 모두 과거의 물건들 조각들 기억들을 행복이라는 타이틀로 턱없이 크게 만들고 부풀리고 숨을 헐떡거리게 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가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의 작품에 자신을 동일시하며 영혼이 천상으로 오르는 듯한 초현실을 겪는다. 아이나 어른이나 눈앞의 쾌락에 무너진다. 거기에 손을 뻗어 닿고 싶어 한다. 상상이 주는 마법의 알약이다. 정화되었다고 느꼈다가 정화조 안에서 깨어난다.


An inflatable happiness, 주입되는 입자들은 커다란 풍선 같은 금속에 갇혀서도 행복하다고 외친다. 내 행복은 커졌어. 내 행복은 총천연색이야. 내 행복은 뜨거워. 내 행복은 이 안에 다 있어. 너를 비추는 이 번들거리는 행복이라는 겹 안의 겹겹으로 말이야. 매끈한 완벽함이 눈동자를 세밀하게 할퀴고 지나간다.


매끈함과 그 뒤의 공포, 행복으로 이르는 곳곳에 이물감 나는 미세한 상처 딱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그의 인문학적 철학으로 읽어도 될까.


세상 곳곳에 귀 기울이는 방문 판매원으로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의 웃음과 손짓 뒤에서, 예술가라는 당치도 않은 타이틀은 집어치우라는 비판을 보기 좋게 비웃는 자신감을 보았다. 포르노 배우를 작품 퍼즐로 쓴 쿤스 자신의 팽창된 누드, 충혈된 관객을 목격한다. 호객은 성공이다.


우린 그렇게 우리 아이들을 교육하지 않는가 말이다. 무엇을 하든 원하는 것을 하는 것에 대해서. 성공하라고.


다큐멘터리는 아름다웠다. 작품에 반사되며, 내내 작품을 촬영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따라 같이 겉돈다. 양각대로 앞으로 튀어나왔다가 길쭉하게 늘어져 사라졌다가 움푹 파여 다시 나타난다. 그것이 진실이다.


그를 감싸 안아 금테 두른 요람에 천천히 흔들리게 두고 주변에서 손뼉 치며 만족해하는 그런 일방적인 따뜻함에 나 혼자 외로웠을까. 그의 금테를 정교하고 완벽하게 만드는 마스크 단단히 한 그의 시스템 속 아티스트 들은 내 눈에 마치 설국열차의 한 기계 부품이 된 어린 소년 같았다.


제프 쿤스 밑에서는 어떤 일을 해도 '촉망'이나 '영광'이라는 딱지를 안게 되겠지.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를 두 번이나 보고 나서 삐딱해진 마음으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품을 만드는 그를 시큰둥 건드린다.


첫 번째 80분간 행복했다.

두 번째 80분간 삐딱했다.


삐딱만 건져오기엔 아쉬워 예술적 영감을 품은 영어 표현들을 듬뿍 노트해 왔다. 그것 만으로도 삐딱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


Mesmerized, 넋을 놓을 만큼 매혹적인, 폴 매카트니의 딸, 쿤스와 협업한 패션 아티스트, 스텔라 매카트니의 입에서 나온 이 한 단어로 나는 화들짝 깨어났다. 그녀의 런웨이 위 그 플레어스커트가 나를 자극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충분한 행복이 기다리는
우리 만의 고유한 세계가 있다.


제프 쿤스에게서 배웠다.


(Jeff Koons. A Private Portrait - Private을 '은밀한'으로 번역한 건 그에 대한 또 다른 미화이며 호소다.)


포스터 from IMDB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철 순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