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28년 전쯤 첫 소설을 썼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날 낮에 길에서 봤던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래브라도 레트리버 한 마리 때문이었다. 혼자 외롭게 배회하는 모습이 실연 후 돌아다니는 내 모습 같다고 느꼈다. 내용은 꽤 간단했다.
자살을 결심한 젊은이가 결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길에서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를 보게 된다. 어딜 가든 줄곧 따라다니는 개를 보며, 남자는 비로소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개를 돌보기 위해 자살을 포기하고 건실하게 살아가게 된다.
A4 용지로 11장쯤 썼었다. 분량으로 보면 딱 단편소설 분량이다. 완성했을 당시엔 몰랐다. 그 작품(?)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를……. 야구를 봐도 첫 안타, 첫 타점, 첫 홈런을 치면 공을 어떻게든 회수에서 해당 선수에게 기념으로 주곤 한다. 타자만 그런 게 아니라 투수도 마찬가지다. 첫 삼진, 첫 세이브, 첫 승을 해도 공을 준다. 시쳇말로 이건 국룰이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명색이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서 아쉽게도 이 첫 소설은 내게 남아 있지 않다. 그것도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마도 몇 번인가 컴퓨터를 바꾸는 과정에서, 이전 자료를 새 컴퓨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실한 모양이었다. 사실 지금이라도 읽어본다면 말만 소설이지, 그건 소설이라고 결코 칭할 수 없는 글이었다. 시점 처리, 배경 및 심리 묘사, 대화 내용 서술 방식 등 하나부터 열까지 유치하기 짝이 없던 글이었다. 그래도 첫 소설인데, 하는 생각이 드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 다시 쓴다면 그때보다는 훨씬 더 잘 쓸 자신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다시 쓰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다. 물론 이러다가 또 언젠가 필을 받으면 언제든 쓰게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안타까워도 지금으로선 기억 저편에 묻어둬야 할 것 같다.
어쨌거나 그게 내 첫 소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28년 동안 소설을 써왔던 건 아니었다. 그 소설을 완성한 후 최소 4~5년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그 후로도 지금까지 몇 년 정도씩은 글을 전혀 쓰지 않기도 했다.
현직에 발령받은 후 동화 수업을 하다 아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도 동화를 한 번 써 볼까?'
아무 지식도 없이, 문학 이론이나 소설작법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이 무턱대고 쓴 첫 동화가 작은 공모전에서 최종심에 오르게 되었다. 신문지면에 내 이름 석 자가 당당히 인쇄된 영광을 안아보기도 했던 나는, 내게 글을 쓰는 재주가 있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난생처음 써 본 동화가 덜컥 최종심까지 올랐으니 조금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3~4년 정도 신춘문예에 동화로 응모했다. 결과는 보나 마나, 최종심은커녕 본심에도 오르지 못했던 걸로 알고 있다. 동화를 쓰는 그 기간 동안 글을 쓰는 것은 더없이 좋았지만, 동화라는 장르의 특수성 때문인지 갑갑증을 많이 느꼈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 낱말 선택은 물론 서술이나 묘사에 있어서도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문득 최종심에 올랐던 그 첫 동화를 소설로 각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난 지금처럼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내가 쓴 것이, 내 브런치북『단편소설 I』에 들어 있는「마이 네임 이즈 케빈」이었다.
난 소설을 쓸 때 소설창작론 등에 의존하지 않는다. 부끄럽게도 난 그런 거 잘 모른다. 아니 굳이 알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집에 웬만한 소설창작론이나 소설작법에 대한 책은 많지만, 어디까지나 참고만 할 뿐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체계적으로 공부한다면 내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테고, 더 나은 소설을 쓸 순 있겠지만, 난 그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이든 많이 해본 놈이 잘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보다 더 쉽고 빠른 길보다는 느리지만 어쩌면 가장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다. 굳이 여기에서 이름을 붙이자면, 나의「소설 창작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 어떤 글이든 나는 쓸 수 있다는 마인드컨트롤을 먼저 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겁을 너무 집어 먹는다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난 이 마인드컨트롤로 적지 않은 소설을 완성했다. 물론 여기에서 작품성이나 소설적 형태로서의 완성도는 따지려 하지 않는다. 늘 내가 하는 말이지만, 이것저것 다 따지면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음을 통제한 결과 단편 15편(첫 단편 소실), 중편 6편, 장편 3편(그중 1편은 첫 단편과 함께 유실) 정도를 썼다. 아마도 처음부터 마음을 그렇게 먹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든 끝까지 쓰지 못했을 테다. 다만 지금 쓰고 있는 아홉 번째 단편소설 역시 완결이 될지 중도에 포기할지는 현재로선 나도 모른다. 그저 글이 가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둘째, 내부 검열관의 말은 철저히 무시하기로 한다. 내부 검열관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비난을 하는 존재(?)를 말한다. 흔히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초자아를 나타낸다고 하는데, 글을 써 본 사람들은 이 내부 검열관의 존재를 자주 확인하곤 한다. 그는 언제든 어디에서든 출몰한다. 특히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서 그 글을 어딘가에 올리려고 할 때 이런 식으로 말을 걸어오곤 한다. 이딴 것도 글이냐고, 어떻게 이런 글을 온라인상에 올릴 생각을 하느냐고 말이다. 솔직히 그 상황에선 그의 말을 듣고 싶어 진다. 혹시라도 글을 올렸다가 망신이라도 당하거나 사람들이 흉볼까 싶어서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를 철저히 무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만약 그의 말에 따른다면 지금 나는 이 공간에 소설은커녕, 브런치스토리 활동 자체도 못하게 될 것이다.
셋째, 1+1, 1+1+1, 1+1+1+1의 방식으로 소설을 쓴다. 쉽게 말해서 문장 하나를 쓰고, 이어서 그다음 문장을, 또 그다음 문장을 쓰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소설들이 그렇게 해서 완성되었고,「이 남자의 영업 비밀」도 지금 그런 식으로 써 가고 있다. 맨 먼저 떠오른 문장을 단숨에 빈 화면에 적는다. 바로 이 문장이다.
P그룹 본사 사원 연수실로 안내받은 나는 긴 복도를 따라가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문장을 쓰는 목표는 간단하다. 무조건 앞 문장과 이어지게 쓴다. 다른 건 생각하지 않는다. 문장을 쓰는 단계에서 낱말 선택이나 표현을 조금 더 세밀하게 다듬는 건 일단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의 대부분을 놓치게 된다. 그건 초벌을 완성한 뒤에 다시 되돌아와 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만약 누군가에게 내 소설을 보였을 때 어떤 악평이 쏟아지더라도 (내 마음은 콘크리트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어차피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그건 가족도 모른다. 물론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그걸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으니 내 소설을 읽었을 때 간혹 악평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그 악평은 충분히 참고는 하되, 이럴 때 좌절은 금물이다. 좌절이 이어지면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굳게 마음을 먹는다. 내 마음은 콘크리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더 많은 소설을 쓰는 것이 목표다. 쓰다 쓰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근사한 소설을 쓰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소설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