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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17. 2024

서울 나들이 가기 전.

나쁘게 생각하면 서로 간의 감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희 부부는 서로 상대방의 명의로 된 신용카드를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 것도 아닌 타인의 것으로 쓴다는 게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이젠 어느새 완벽하게 적응이 되고 말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곤 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신경 써야 합니다. 어디에든 가서 신용카드를 쓰게 되면, 사용처와 사용내역 등이 바로 상대방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물론 옳지 못하거나 이상하거나 혹은 나쁜 일에 소비할 리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납득하기 어려운 곳에 쓰게 된다면 해명이라는 껄끄럽지 못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쓰기 전에 몇 번이고 신중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직장에 있던 아내에게서 오후에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습니다.

- 기차표 끊었던데, 어디 가?

- 아, 그냥 내일 서울 한 번 갔다 오려고.

- 이 날씨에 서울 간다고? 많이 더울 텐데 어떻게 다니려고 그래?

- 뭐, 더운 게 하루이틀 일이야? 다음 주에 개학이니까 그전에 한 번 갔다 올까 싶어서.

폭염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이때에 하필 서울 나들이를 간다고 하니 못내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다 좋은데 그다음 질문에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 그래, 잘 갔다 와. 그런데 가서 어디 어디 둘러볼 건데?

딱히 세워 놓은 계획이 없습니다. 말 그래도 코에 바람이나 넣어볼까 하는 마음에서 집을 나서려는 겁니다. 아무리 더워도 이 정도 날씨에 하루에 꼬박 1만보씩은 걸어 다니는 저입니다. 대구보다 덜 더운 서울 날씨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아내와 메시지 주고받기를 끝낸 뒤에 문득 내일 서울 가면 뭘 할지 생각해 봅니다. 사람이 이렇게도 대책이 없다니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색이 대구에서 서울까지 나들이를 가는데, 어디로 갈지 방향도 정해놓지 않고 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제 성격이 완벽하게 발현되곤 합니다.


'뭐, 안 되면 하루 종일 서울역 스타벅스에서 글이나 쓰다 오지.'

글은 여기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 굳이 그 먼 서울까지 가야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평소에도 집 앞 파스쿠찌에서 글을 써왔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내일 멀리까지 나갔다 돌아온다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입니다.


갈 때는 동대구역에서 KTX를 타고 갑니다만, 올 때는 제 로망 중의 하나인 ITX-새마을 기차를 타고 돌아옵니다. 시간은 KTX보다 훨씬 많이 걸리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쾌적한 열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돌아오는 것이 저의 일종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큰마음먹고 내친김에 이번 기회를 통해 달성해 보려는 는 것입니다.


날씨가 잘 받쳐줬으면 좋겠습니다. 비 올 확률도 30%나 된다고 기상예보에 나와 있긴 했지만, 이 낭창하기 짝이 없는 저는 '설마 내일 비 오겠어?' 하는 심정으로 기차에 오르려 합니다. 뭐, 내일 어디 갈지는 내일 결정해 보려 합니다. 정 안 되면 서울역 스타벅스에 하루종일 있다가 와도 나쁘진 않을 것 같고요. 서울의 명승지나 관광지 등에는 별 흥미가 없습니다. 멀리 가서 그곳의 공기도 느껴보고, 대구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 서울사람들도 내일 실컷 구경해 볼까 합니다.


내일 서울 나들이를 앞두고 있으려니 설레는 밤을 보내는 중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젠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 되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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