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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17. 2024

한낮의 여유

삼백 아흔두 번째 글: 누가 욕하면 어떤가요?

명분은 휴대폰 충전입니다. 아무 데나 들어가야 했습니다. 당연히 콘센트가 있는 곳이라야 합니다. 가장 만만하게 떠오르는 건 카페입니다. 어딘가 한 군데를 들렀다가 지난번에 왔던 곳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조용해서 좋은 곳이었습니다. 뭐, 커피도 그럭저럭 먹을 만했고요. 조금 걸어야 한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이 정도의 날씨라면 고작 10분쯤 걷는 건 일도 아닙니다.


기억을 되살려 발걸음을 옮깁니다. 몇 번인가 헤맨 뒤에 결국 찾아냅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성신여대 후문에 있는 이디아 커피입니다. 이번에도 와 보니 조용해서 좋습니다. 직접적으로 햇빛이 들이치진 않지만, 창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아, 딱 이 정도의 날씨면 참 좋겠다.'

그런데 지금처럼 이런 경우엔 뭐라고 표현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불을 보고 있는  불멍이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창밖의 햇빛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갑니다. 몇몇 생각들은 제게 붙들려 한참 머물다가 사라집니다. 사라지기 전에 잘 붙들어두면 하나의 글감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그냥 녀석을 보내주기로 합니다. 가끔은 매번 골머리를 앓는 두뇌에게 휴식을 줄 필요도 있는 것입니다. 작가도 아닌 제가 글 한두 편 덜 쓴다고 일 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정말이지 여유롭기 그지없는 한낮입니다. 과연 이런 여유를 언제쯤 느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가 이러고 있는 걸 알면 제 아내는 분명 불같이 화를 낼 겁니다. 고작 그러려고 그 멀리까지 갔느냐고 할 게 뻔하거든요. 피 같은 돈, 왕복기차비 70,000원이나 써 가면서 말입니다. 아내는 무슨 일이 있어야 가는 게 서울이지만, 제게 서울은 별일이 없어도  수 있는 곳입니다. 참고로 저는 INFP이고, 아내는 ESTJ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어쩌면 이렇게 만나게 되었을까요? 완벽히 극에 극에 선 두 사람이 말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전 지금 최고로 기분이 좋습니다. 날씨도 따뜻한 곳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시나리오도 없는 즉석 영화로 말입니다. 게다가 틈틈이 이렇게 글도 씁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7만 원의 값어치를 할 리는 결코 없을 테지만, 70원짜리의 글이면 또 어떻습니까? 저만 좋다면 된 것이지요.


좋습니다. 70원짜리의 글을 쓰면서 이렇게 여유를 누리고 있는 지금 더없이 편안합니다. 7만 원과 바꿀 값어치는 충분하니까요.


사진 출처: https://pix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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