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사람
사백 다섯 번째 글: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건 꼭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기 때문에 더 권위를 가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라도 이 세상을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라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도 결국은 사람이 완벽하게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겠습니다.
일단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무리를 이루어서 살아가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사회라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2차적인 사회 속에서도 우린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체로 그런 집단들은 이에 소속된 구성원들의 성향과 성격은 달라도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 학교의 같은 학년 같은 반, 혹은 같은 학과 등에 소속된 경우가 이에 해당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족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사회라고 보면 됩니다. 결혼이나 취직 등으로 가족 구성원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적(籍)은 각자의 가정에 두고 있습니다. 그건 세대가 교체하면서 새로운 구성원이 태어나거나 기존의 구성원이 죽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대가 교체되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 근본이 되는 정서적 기반은 한 곳에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와는 달리 2차적인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우리가 소속하게 되는 2차 집단의 성질과 종류도 다양해집니다. 우리에겐 그만큼 선택권이 넓어짐과 동시에 현재 자신이 처한 입장이나 처지에 따라 소속되는 단체도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물론 근무지를 옮기거나 승진 등을 하면서 공동체 구성원이 자주 바뀌기도 합니다. 더러 누군가는 소속된 집단을 아예 떠나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바뀌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한때는 동료였다가 헤어지게 되거나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과의 결속력이 영원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같이 있을 때에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 같이 행동하다가도 서로가 적을 달리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때로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간혹 이들과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문제 등으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이 날 때면 한 번씩 그들에게 연락하곤 하지만, 그들은 어지간해서는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결코 먼저 연락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밤 자기 전에 유튜브에서 들었던 동영상 강의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강의의 주제는 대인관계와 관련된 것인데, 제가 귀담아 들었던 부분은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대목이었습니다. 강사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일면식도 있고 현재 어떤 식으로든 연을 맺고 있지만, 먼저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은 망설이지 말고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을 생각하는 만큼의 비중으로 우리를 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그 혹은 그녀는 어느 정도의 의미를 지닌 사람이지만, 우리는 그 혹은 그녀에게 전혀 의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강의에서는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루빨리 정리하는 게 낫다고 말입니다.
더러는 사람이 너무 매정하게 그러는 게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연을 끊으라는 말이 무리도 아닌 게 제가 생각하기엔 그들이 먼저 연락을 해오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소식이 궁금해서 종종 연락을 취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들이 부담스러워하거나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심지어 심한 경우에는 전혀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제가 하는 얘기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반드시 우리는 손해를 보면 안 된다는 그런 편협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일방적인 관계는 시들해지기 마련이고, 한쪽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와 같은 관계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연락을 내켜하지 않거나 싫어한다면 우리 역시 그들에게 연락해선 안 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린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습니다. 그 인연이 영원히 지속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인연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입니다. 당장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를 열어봐도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연락처를 훑어보면서 그들과 가장 최근에 연락을 주고받은 게 언제인지 생각해 보세요. 과연 우리가 그들 모두와 매일 같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왔을까요? 매일 같이 연락을 주고받는 건 사실 염두에 두지도 않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혹은 만약 기억하고 있다면 그 누군가의 생일이나 우리의 생일이 다가올 때마다, 혹은 해가 바뀔 때마다 그 많은 사람들과 꼬박꼬박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신가요?
그들 중에서 아마도 적지 않은 이들이 우리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면 결코 연락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장담합니다. 만약 전화번호부에 수백 여 개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다면 이삼십 명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이런 유형에 속할 것입니다. 흔히 오랜만에 길을 가다 누군가를 만나면 우린 인사치레로 '다음에 같이 밥이나 한 번 먹읍시다'라고 하며 헤어지지만, 실제로 그들과 밥을 먹는 경우는 손에 꼽을 것입니다. 그 희박한 경우를 위해 굳이 우리가 그들의 연락처를 남겨 두어야 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전화번호부를 열어서 빼곡히 저장된 연락처를 한 번 훑어보십시오. 카카오톡에 친구로 등록된 그 많은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저는 과감하게 정리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 남겨 둔 연락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얘기해도 될까요? 그 만일의 경우라는 건 살면서 없을 확률이 높을뿐더러, 만약 그런 만일의 경우가 와도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기는 힘들 것입니다.
과감히 정리하십시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삭제되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라게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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