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이었던 1979년, 제가 입학했던 국민학교(개인적으로 저는 지금도 '초등학교'라는 말보다는 '국민학교'가 더 좋습니다. 일제의 잔재니 어쩌니 해도 교육의 취지로 봐도 그게 더 합당한 것 같고요.)는 전교생이 5천 명이 넘는 큰 학교였습니다. 한 반에 68명씩 있었는데, 5학년 때 제가 14반이었고 바로 옆에 한 반이 더 있었을 정도니까요. 학생들의 수가 많아서인지 학교도 꽤 컸습니다. 주로 정문으로 다녔지만, 한 번씩 학교 담을 따라 후문까지 가려면 한참을 가야 했습니다. 작은 체구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그 짧은 다리로 걷다가 뛰다가 장난치다가 웃다가 하며 가곤 했으니 그것도 무리는 아니겠습니다.
아, 물론 그건 기억의 오류입니다. 2년 전쯤 그쪽에 갈 일이 있어서 모교에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삼십칠팔 년 만이었습니다.
'뭐지? 우리 학교가 원래 이렇게 좁았었나?'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입니다. 어떻게 이 좁은 곳에서 5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녔을까 싶었습니다. 하긴 운동회도 이틀인가 사흘인가에 나눠서 했고, 한동안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구분해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주사'라고 하지요? 더 이른 시기엔 '소사'라고 부르던 분이 몇 분 계셨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외근직 행정주무관입니다. 일하는 아저씨들이 그 큰 학교(일단 유년의 기억에 의지하겠습니다)를 돌아다니시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하셨습니다. 아직도 일부 초등학교가 그렇듯 당시 국민학교 교장은 시쳇말로 '왕'이었습니다. 군대로 말하자면 사단장에 버금가는 권위를 갖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한 마디로 까라면 까는 시절이었단 뜻입니다.
주사님들의 주된 일과는 화단 정비였습니다. 가로로 길게 뻗은 화단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물론 어떤 꽃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이 각인된 꽃이 있습니다. 바로 사루비아입니다. 흔히 샐비어라고 하지요. 꽃을 똑 따서 쪽쪽 빨아먹으면 신기하게도 꿀맛이 나던 꽃이었습니다. 매일 먹었던 건 아니지만, 가끔 목이 마르거나 입이 심심할 때면 사루비아가 있는 곳으로 가서 꽃잎이 홀쭉할 때까지 빨아서 먹곤 했습니다. 그 큰 화단에 유독 사루비아가 있는 곳에만 아이들이 모여드는 이유이기도 했고요.
그러던 어느 날 교장선생님이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학생들이 사루비아를 먹지 말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겠으나, 아이들이 마구 빨아먹고는 시멘트 바닥 위에 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음씨 좋은 그 주사님은 교장선생님에게는 '예'라고 대답해 놓고, 저희들을 보고는 마음껏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아마도 통 하나를 준비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 통 속에 버리라는 것이었지요.
그즈음에 미니 빼빼로처럼 생긴 막대형의 과자 '사루비아'가 나왔습니다. 하루 용돈이 50원이었거나 아예 없던 날도 많았던 우리들은 친구들과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처음 사 먹었습니다. 사루비아 꽃의 그 단맛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영 아니더군요. 텁텁한 것이 물 없이는 못 먹을 것 같은 과자였습니다. 그 어린 마음에도 이게 무슨 사루비아냐고, 과자 이름 잘못 붙였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5학년이 되어선 더는 먹지 않게 된 사루비아, 하지만 지금도 사루비아 꽃만 보면 그 순수했던 시절이 함께 떠올라 가슴이 부풀어 오르곤 합니다. 이젠 먹거리도 너무 다양해져 사루비아 꽃을 먹을 이유가 없어지긴 했습니다만, 그 시절 배 한 구석을 넉넉히 채워 준 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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