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주제: 힘들 때 힘이 되어 주는 글귀나 문장을 써 주세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만, 대략 5~6년 전쯤 플라톤의 대화편 스물여섯 편 모두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딱 1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스물여섯 권의 책 중 『변명』에서 굉장히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바로 ‘캐묻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라는 말입니다. 당시 이 글귀를 읽었을 때 저는 상당한 충격에 사로잡혔습니다. 과연 저는 캐묻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깊은 영향을 준 문장이니만큼 한 번 더 천천히 또박또박 읽어 보겠습니다.
캐묻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
번역하기에 따라 이 문장은,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 혹은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라는 문장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말로 옮겨 놓으면 별로 힘이 실리는 느낌이 없다고 하는 분들을 더러 보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영어로 옮겨 보겠습니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사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캐묻는 방법으로 주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자기 계발서 등에 의존해 자기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곤 합니다. 그것 또한 나쁜 방법은 아니겠으니, 문득 여기에서 우린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내 안에 부처가 있다.
누가 한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의미가 중요한 것이겠습니다. 내 안에 부처가 있다는 말은 득도하기 위해서, 진리를 찾기 위해서 멀리 가서 헤맬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열쇠는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우리의 삶을 우리에게 캐묻기 위해 나 자신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기 계발서에 의존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계발할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서 성공한 일을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한다고 해서 그 효과가 보장된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류들의 책에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입니다. 조금 더 편하고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쉽고 편하고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은 정도가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도(道)는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진정으로 도를 구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내부로 침잠해서 수양하다 보면 그 도를 깨우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바깥에서부터 뭔가를 끌어올 게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켜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선 자기 철학의 확립, 냉철한 현실 인식, 그리고 (그런 현실 인식이 바탕이 된) 새로운 우리 자신으로의 변화 시도 등이 따라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것은 곧 어떤 급류에도 휘말려 들지 않을 수 있는 굳건한 자기중심, 즉 자기 철학 혹은 자아정체성을 세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제 더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흠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모든 감각이 총동원되어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 자신을 변화 및 발전시켜 나가야 할 테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의 더듬이는 오직 시각적인 데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애써 깊이 생각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어떤 현상을 대할 때 이건 왜 이럴까, 하며 분석하고 결론을 내릴 필요성조차 없어져 버렸다는 얘기입니다. TV나 컴퓨터의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만 열면 언제든 우리를 대신에 사고하고 판단하며 결정까지 내려주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날로그가 대세였던 시대처럼, 하루 종일 발품을 팔지 않아도 우린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움이나 설렘과 같은 시시껄렁한 감정에 사로잡힐 필요 없이 언제 어디에서든 버튼만 누르면 상대방의 얼굴을 화면으로 보며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획기적인 발전 속에 함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세상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자기 자신에게서 멀리 벗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한 건, 이건 캐묻는 삶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캐묻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발전과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