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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09. 2024

대답 없는 너

사백 열한 번째 글: 제발, 대답 좀 하세요! 여보세요! 살아 있나요?

힘없이 멈춰진 하얀 손

싸늘히 식어가는 눈빛

작은 그 무엇도

해줄 수가 없었던 나


비라도 내리길 바랬지

며칠이 갔는지 몰랐어

그저 숨 쉬는 게

허무한 듯 느껴질 뿐


이제 난 누구의 가슴에 안겨서

아픔을 얘기해야 하는가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싶지만

들어줄 너는 없는데


위 노래는 1992년에 발표된 가수 김종서 씨의 1집 REHTONA의 타이틀곡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곡입니다. 발매 당시 94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후문이 있는 만큼 대단한 히트를 친 곡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뜬금없이 이 노래 타령을 하냐고요?


요즘 들어 저는 이 노래가 많이 생각이 납니다. 덩달아 자주 흥얼거리기까지 합니다. 사실 노래로서는 큰 손색이 없는 명곡 중의 명곡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명곡이라서 흥얼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딱 지금의 저 같은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가만히 있다가 드문드문 이 노래가 생각나는 이유입니다. 이 노래의 제목은 '대답 없는 너'입니다. 화자가 청자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청자는 듣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그런 청자에게 화자가 대답이 없느냐고 하소연하는 노래입니다.


또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을 보고 저에게 항의하거나 화가 난 표정을 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제가 할 말을 해야겠습니다. 어차피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로 옮겨 봤자, 나이는 들었는데 옹졸해 빠진 꼰대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마음속에 담아두면 되지 않겠냐고 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엔 제가 그 응어리를 감당할 그릇이 안 됩니다.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느낄 정도라면 이런 식으로라도 표현을 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저는 올해 신학기를 맞이하면서 학년을 총괄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제 의사에 따라 맡은 직책이니 이에 대해서는 하등의 불만 사항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책임감을 갖고 새 출발을 다짐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소속된 동학년은 적지 않은 수의 학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록 위층과 아래층으로 나눠져 반이 흩어져 있긴 합니다만, 초창기에는 선생님들도 모두 심성이 선하고 붙임성이 있어서 멋진 조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합이 좋으면 좋을수록 1년 동안의 생활이 원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건 아무래도 저만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여전히 그들이 착한 사람들인 건 맞는데,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다는 얘기입니다. 같은 말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외국어를 쓰고 있는 사람이 모여 동학년을 꾸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입니다.


학교에선 보통 학내망 메신저를 통해 모든 연락이 이루어지는데, 요즘 들어서 하든 소통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오후에 무슨 무슨 행사나 이런저런 일이 있으니, 이렇게 저렇게 하시면 됩니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면 대개 '네.'라거나 알겠다는 식의 답장이 오기 마련입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의 입장에선 그 답장을 보고 제대로 내용이 전달되었구나, 하며 마음을 놓고 다른 일로 건너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아무런 답장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런 가지고 그러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최소 학기 동안 반복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같습니다. 읽었으니 되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보낸 내용을 숙지했고, 지침에 따라 아이들을 지도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것입니다. 만약 제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명백히 그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조차도 안 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나 학식을 가졌다고 해도, 아무리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는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공동체 전체를 봐서는 그런 분은 굳이 함께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몇몇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여전히 답이 없더군요. 일전에도 제가 이런 문제로 같은 글을 쓴 적이 두어 차례 있었습니다. 시쳇말로 '쿨'한 것과 '경우 없음' 혹은 '예의 없음'을 혼동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제 글을 그분들이 본다면 결코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스무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 즉 세대 차이에서 기인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예의는 반드시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정말 그들이 쿨한 것이고, 제가 별 것도 아닌 일에 쪼잔하게 구는 꼰대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까요? 더 화가 나는 건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직 생활 25년 동안 이만큼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 출처: 다음에서 '대답 없는 너' 앨범 사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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