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Sep 11. 2024

콩국수

2014년 7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때는 마침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던 터라, 으레 성적 사정 작업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때였습니다. 문득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발신지를 확인해 보니 저희 어머니셨습니다. 다들 아실 겁니다. 정신없이 바쁠 때에는 일단 가족이 건 전화는 패스하기 쉽다는 걸 말입니다.

“엄마, 왜? 나 지금 정신없이 바빠.”

“언제 한 번 집에 왔다 가라.”

“지금은 곤란해.”

“와?”

“성적 작업 중인데 일주일 정도 있으면 끝나니까 그때 갈게.”

“알겠다.”

“왜 무슨 일 있나?”

“아니, 그냥.”

“엄마도 참 싱겁기는. 우리 자주 보잖아.”

“그래, 그건 그렇지. 참 콩국수가 디기 먹고 싶네.”

안 그래도 정신이 없던 차에 저는 별 일 다 보겠다는 듯 통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저와 어머니가 나눈 마지막 전화 통화였습니다.


성적 작업을 다하고 내친김에 방학까지 맞이한 다음다음 날 저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뜬금없이 중환자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어머니가 의식불명인데 의사는 아마 이대로 돌아가실 확률이 높다는 말까지 했다고 하며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저는 김첨지던가요? 그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인력거 벌이가 잘 되던 날 우동(국수인지 헷갈립니다만) 한 그릇을 사 들고 왔더니 싸늘하게 식어 있더라는 고 현진건 선생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보는데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저와 통화를 했고, 며칠 뒤에 제가 보러 가겠다고 했는데, 게다가 난데없이 콩국수까지 드시고 싶다고 했던 사람이 그렇게 누워 있는 걸 보니 망연자실하지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붕대를 칭칭 감은 어머니는 의사가 아닌 제가 보기에도 외관상 뇌가 심하게 부어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3층 빌라에 사시던 어머니가 계단을 올라가다 발을 헛디뎌 뒤로 굴러 떨어졌는데, 그때 두개골이 골절되었다고 합니다. 계속 피가 흐르는 가운데 정신을 잃고 그대로 네 시간 이상 방치된 어머니를 귀가하시던 아버지가 발견하셨다는 것입니다. 뇌에 고인 피를 빼내는 수술만 세 번 받고는 그 길로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제 일이라는 게 사실은 그렇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보니 성적 사정은 제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일이 하루이틀 늦어지더라도 하던 일을 잠시 미루고 어머니를 뵈러 갔다면 그나마 가시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볍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많이 됩니다. 살아가면 갈수록, 또 제가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그건 점점 더 회환으로 다가오기까지 합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원래 저는 콩국수를 잘 먹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준다면 마다 할 이유는 없지만, 굳이 제 돈을 주고 사서 먹는 일까지는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콩물의 그 뻑뻑한 식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콩국수를 볼 때마다, 혹은 길을 가다 가게 유리문에 적힌 콩국수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건 평생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연 아무렇지 않게 콩국수를 먹을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빴던 오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