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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12. 2024

작은 것을 잘 지켜야 합니다.

#22.

요즘 들어 아침에 지하철을 탈 때마다 보는 광경이 있습니다. 법에 저촉된다거나 따지고 보면 그리 논란이 될 만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다른 객차나 다른 위치도 아닙니다.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앞에 있는 지점입니다. 늘 제가 타면 항상 저 자리에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저 남자분이 앉아 있습니다. 아마 저보다 앞선 역에서 탑승했다는 것이겠습니다.


맨 처음 봤을 때에는 그냥 빈자리가 없어서 앉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 사람을 본 게 오늘까지 족히 3주는 되었습니다.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단 한 번도 바로 저 자리 외에는 그 어떤 곳에도 앉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여분의 자리가 많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오른쪽 옆의 두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두 개의 빈자리는 제가 타서 열 개의 역을 지날 때까지 비어 있었습니다.


한동안 저 사람을 관찰해 봤습니다. 저보다 먼저 탔으니 탑승한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내리는 순간까지 눈을 감은 채 저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하다 못해 생김새도 멀쩡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웬만한 중견배우 뺨칠 만큼 잘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가 봐도 어떤 문제가 있어서 '저 자리는 늘 비워 놓아야 하는 자리'라는 인식을 못할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빈자리만 해도 일곱 개나 있는데, 왜 거기 앉냐고 말입니다.


사실 저 남자분의 행동이 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잘 지켜지면 좋지만 안 지켜져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인지도 모릅니다. 임산부 배려석이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합니다. 말 그대로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해 만든 자리이니 가급적이면 비워 놓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요란하게 표시해 놓는 겁니다.


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저기 앉아 본 적이 습니다. 게다가 전 남자이니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내하면서까지 굳이 저 자리에 앉아야 할 이유도 없고요. 사실 여기에서 남녀 역차별이라는 말도 있긴 합니다. 말은 임산부 배려석이라고 하지만, 남자는 앉지 말라는 자리 아니냐는 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남자분은 매일 저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이리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아주 뻔뻔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예 경우가 없는 사람입니다. 저런 것 하나조차 무시하는 사람,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자기 편의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다른 인성적인 측면은 재고해 볼 가치조차 없는 사람일 겁니다.


간혹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선진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뭔가 대단한 차이점이 있을 거라고, 위인은 범인과는 달리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그들만의 특징이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그것도 틀린 생각은 아닐 겁니다. 다만 정작 선진국이 되게 하는 요소는, 위인을 탄생하게 하는 요소는 기본을 무시하지 않는 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작은 것을 잘 지키는 사람과 기본이 무시되지 않는 사회가, 곧 올바른 사람이고 올바른 사회인 것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살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납득이 가는 사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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