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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18. 2024

소원을 빌어!

사백 열다섯 번째 글: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은 없지만…….

어젯밤 처 이모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잠시 소동이 일었습니다. 저녁 6시 17분에 슈퍼문이 뜬다며 설레발을 치던 아내가 하늘을 보고는 달이 떴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전 속으로 괜스레 심통이 나서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슈퍼문이 대수야? 달이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매번 보는 달을 가지고 뭘 저렇게 유난이야?'

분명 속마음은 그랬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작 하늘을 보니 요 근래 들어서 참 보기 드물 정도로 달이 꽉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성능이 꽤 괜찮은 스마트폰으로 최대한 줌을 당겨 몇 장 찍었습니다. 가장 잘 나온 것 외에는 어차피 버릴 사진들이니까요.


찍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입니다만 조금만 더 세심하게 찍으면 거의 천체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기가 막히게 찍혔습니다. 한창 달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젖는데, 아내가 저희 흥을 깨고 나섭니다.

"야들아! 달 보고 소원 빌어라. 정성껏 빌어야 해."

차 옆자리와 뒷자리에 각각 앉아 있던 아들과 딸에게 한 말입니다. 저는 또 한 번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달을 보고 소원을 비냐고 말입니다. 어째 가만히 보니 흥을 깨는 건 아내가 아니라 오히려 저인 것 같았습니다.


달 속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는 토끼가 커다란 절구통에 떡방아를 찧는다는 말을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때의 달은 제게 달이 아니라 달님이었습니다. 그렇게도 순수했던 시대가 언제 있었냐는 듯 이제는 너무도 많이 변질되고 말았지만, 생뚱맞게도 아직까지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풍습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달을 보고 소원을 빈다고 해서 그 소원이 이루어질 턱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는 것, 자신의 소원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자기 암시의 효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사람에게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오듯 그렇게 되뇌어진 소원은 그냥 가슴속에 고이 묻어둔 것보다는 이룰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 싶기도 합니다.


오래전 돌아가신 저희 어머님께서도 달만 보면 소원을 빌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건 제가 어릴 때뿐만이 아니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나중에 아들과 딸을 낳았을 때에도 그런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엄마! 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진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나?"

"밑져야 본전 아이가. 이루어지면 좋고 안 이루어져도 뭐 개안코."

어쩌면 그런 낙천적인 생각이 못내 부러웠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십여 년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건지 그런 낭만 하나 없이 살아온 제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실컷 분위기를 잡았더니 아내가 분위기를 다 깬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저 역시 아무도 모르게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곤 합니다. 그렇게 해서 빈 소원들을 아마 종이에 옮겨 적어도 몇 장쯤은 거뜬히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뤘던 소원이 있냐고요? 당연히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그렇습니다. 물론 제가 소원만 빌고 인간적인 노력을 게을리한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걸 익히 알면서도 노력보다는 오히려 소원 빌기에만 급급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에도 소원을 하나 빌었습니다. 그 소원이 무엇이냐고요? 그저 매일매일 별 탈 없이 글을 쓰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글감이 떨어지지 않게, 또 만약 생각나지 않는 날이 있더라도 금세 뭔가를 하나 뽑아 올려 글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아마도 달님도 양심이 있다면 오십 년 넘게 저의 소원을 외면해 왔으니 이번 소원만큼은 들어주지 않겠나 싶습니다.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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