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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24. 2024

선택의 순간

사백 스물한 번째 글: 선택을 잘한 게 맞겠지요? 

한 15년 전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과연 그렇게 할 만한 일이었나 싶은 생각은 듭니다만, 대개 사는 게 그렇듯 그 당시에는 꽤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며칠 아니 몇 달을 한 가지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도 늘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저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고민과 갈등의 시간만 길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묻고 지나가기엔 시시각각 조여드는 그 힘이 너무 강렬했습니다.


무작정 집을 나섰습니다. 그때 제 생각 속엔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정처 없이 걷다가 한 작은 야산을 발견했습니다. 한참 동안 서서 입구를 지켜봤더니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나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딱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입구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곳이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발을 밟는 곳이라고 여겼습니다.


등산을 하러 온 것도 아니면서 산을 오르내렸습니다. 의식을 치를 만한 알맞은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 제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변에는 아직은 제법 쓸 만한 끈도 있었습니다. 제 딴에는 꽤 튼튼해 보이는 나뭇가지에 매듭을 묶었습니다. 별도로 뭔가를 남기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있었다면 주머니에 든 12700원 정도의 돈뿐이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목을 거기에 걸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죽는 사람들이 그 짧은 순간에 살아온 그간의 세월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건 정말 확실히 그렇더군요. 시간에 대한 감각은 어차피 소용이 없었을 겁니다. 차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입니다만, 그때 분명 꽤 몸부림을 쳤던 모양입니다. 뚝,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렇게 튼튼해 보이던 나뭇가지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 약간 경사진 곳에 있던 그 나무 탓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저는 내리막을 굴러 떨어졌습니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다만 팔꿈치나 무릎 등에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죽기로 마음먹은 놈이 고작 그 정도 상처에 연연해했을까요?


참으로 우습게도 그 순간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어쩌면 저 나름대로 죽다가 살아 돌아왔다는 생각을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끼를 먹지 않고 버틸 때까지만 해도 허기를 느끼지 못하던 상태였습니다. 가게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족히 3~40분은 걸어가야 했습니다. 터덜터덜 걸어서 내려갔더니 작은 구멍가게 같은 데가 나왔습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돈은 드릴 테니까 라면 하나만 끓여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원래 라면을 파는 곳은 아니지만, 아주머니는 기꺼이 끓여주겠다고 했습니다. 팔꿈치와 무릎에 더덕더덕 말라붙은 피딱지며 엉망인 몰골이 동정심을 일으킨 듯했습니다.


그때 라면을 먹고 있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녀시대라는 걸그룹의 「다시 만난 세계」라는 노래였습니다.


다시 만난 세계

전해 주고 싶어 슬픈 시간이 다 흩어진 후에야 들리지만
눈을 감고 느껴 봐 움직이는 마음 너를 향한 내 눈빛을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 눈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 줘 상처 입은 내 맘까지
시선 속에서 말은 필요 없어 멈춰져 버린 이 시간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 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 눈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 줘 상처 입은 내 맘까지
시선 속에서 말은 필요 없어 멈춰져 버린 이 시간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 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우리의

이렇게 까만 밤 홀로 느끼는 그대의 부드러운 숨결이
이 순간 따스하게 감겨 오네 모든 나의 떨림 전할래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 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 줘
이 순간의 느낌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우리의


가사가 제겐 얼마나 슬프게 들렸던지 라면을 먹다 말고 혼자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는 결국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라면을 먹고 나서 그다음에 뭘 해야겠다고 생각한 기억은 없습니다. 다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야 되겠다고 말입니다.



영상 출처: 유튜브,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https://youtu.be/0k2Zzkw_-0I?si=N-LlA0aGjKvGVY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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